대선주자들의 경제민주화 공약 가운데 재벌그룹들이 가장 긴장하는 건 역시 지배구조와 관련된 사안들이다. 순환출자금지나 금융계열사에 적용될 금산분리강화 원칙은 총수의 지배력과 재벌 시스템의 골간을 흔드는 것이어서, 각 그룹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민감한 곳은 국내 1,2위 재벌그룹인 삼성과 현대차이다. 이들은 순환출자가 금지되고 금융계열사 의결권이 제약 받을 경우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에 노출될 것이며 이를 막으려면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12일 공정거래위원회와 기업지배구조 관련 연구기관 등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현재 15개 정도의 크고 작은 순환출자고리를 갖고 있으며, 현대차그룹은 3개의 순환출자가 형성되어 있다. 만약 정치권의 순환출자금지가 입법화돼 이 고리를 해체하려면 삼성은 적게는 10조원에서 많게는 30조원, 현대차도 최소 10조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가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그룹으로선 삼성전자의 경영권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순환출자가 해체될 경우 충분한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만큼의 삼성전자 지분을 추가 확보해야 하는데 삼성전자 주가가 워낙 비싸 수십조원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산분리 강화도 문제다. 각 후보들은 재벌소속 금융계열사에 대해선 의결권행사를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경우 삼성생명이나 삼성화재, 삼성카드 같은 삼성계열 금융계열사들은 다른 계열사에 대한 의결권이 크게 축소된다. 지난 6월말 기준 이건희 회장 등 총수일가(4.7%)를 포함해 삼성계열사들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총 17.6% 정도다. 하지만 금융계열사들의 의결권을 제한할 경우 실질적 지배력은 8.8%로 줄어들게 된다.
현재 삼성전자는 외국인 지분율이 50.7%나 되는데, 만약 이렇게 의결권을 축소시켜 놓을 경우 삼성전자가 외국인 손에 넘어가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삼성측 우려다. 한 재계 고위관계자는 "순환출자 해소도 그렇고 금산분리 강화도 그렇고 이런 규제조치가 시행될 경우 국내 핵심기업이 적대적 M&A에 노출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승록 착한자본주의연구원 대표도 "정치권이 주장하는 순환출자 해소와 금산분리는 실질적으로 재벌그룹을 해체시킬 수 있는 강력한 조치"라고 말했다.
현대차의 경우 삼성에 비해 순환출자 구조는 비교적 단순하지만, 경영권 승계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 현대차그룹 후계자인 정의선 부회장은 현재 그룹 지주사격인 현대모비스 지분이 0.67%에 불과하기 때문에, 순환출자고리를 끊을 경우 모비스 지분을 대폭 늘려야 하며 이를 위해선 최소 6조원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사실상 그룹을 승계하지 말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때문에 재계는 경제민주화 조치를 취하더라도, 경영권과 관련된 부분은 신중을 기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행 재벌지배구조는 개발연대 이후 사업다각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역사적 산물인데, 이를 한꺼번에 해소하라는 건 사실상 경영권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한 그룹 고위관계자는 "일감몰아주기 같은 시장 불공정행위에 대한 규제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룹 경영권을 위협하는 지배구조부분은 쉽게 수용키 어렵다"면서 "경영권이 위협받는 상황이라면 투자도 고용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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