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67일 앞두고 국회 국정감사 무대에서 여야 정치권과 대기업 총수 간의 전운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증인 채택' 카드로 대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대선 화두인 경제민주화를 놓고 벌이는 여야의 선명성 경쟁이라는 해석이 많다. 재계에선 "대선 정국에서 보여주기식 기업인 줄소환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기업 총수들은 해외 출장 등을 이유로 국감장에 출석하지 않아 빈축을 사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는 12일 전체회의를 열고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하고 23일 종합감사에 출석할 것을 요구했다.
기재위는 삼성그룹 2인자인 최지성 삼성그룹 부회장도 증인 협상 리스트에 올렸지만 삼성전자 사장단 중 한 명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선에서 합의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재계에서는 "'일감 몰아주기'는 기재위 소관도 아닌데 재벌 총수를 증인으로 채택하는 건 무리한 측면이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SK 그룹 최 회장도 국감에 불출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여겨진다.
대기업 총수에 대한 증인 채택 논란은 기재위뿐 아니라 국회 정무위, 환경노동위, 지식경제위 등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 11일 정무위의 공정거래위 국정감사에선 대기업 유통업체 총수 일가에 대한 성토가 봇물을 이뤘다. '골목 상권 침해' 등을 이유로 증인으로 채택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등이 끝내 국감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 회장의 경우 불출석 사유서에서 1년 중 해외 출장 기간이 110일에 달한다는 이유를 들이댔다. 여야는 "엄중히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새누리당 박민식 정무위 간사) "고발 조치도 불사할 것"(민주통합당 김영주 정무위 간사) 등의 언급을 하면서 23일 종합감사 출석을 재요구했다.
환노위 역시 '현대차 불법 파견' 관련 김억조 현대자동차 부회장, '삼성전자 백혈병' 관련 최우수 삼성전자 부사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지경위가 채택한 증인 32명 중에는 이승한 홈플러스대표, 최병렬 이마트 대표, 노병용 롯데마트 사장, 프레스톤 드레퍼 코스트코코리아 대표이사 등이 대거 포함됐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노인식 삼성중공업 대표이사는 이미 지난달 25일 2007년 유조선 사고 해상오염 피해 대책을 다루기 위한 국회 태안피해대책특위에서 증인으로 채택된 상태이다. 하지만 이들이 실제 증인으로 출석할 가능성은 적다. 주요 그룹 측은 끈이 닿는 여야 인사들과 접촉하면서 국정감사나 국회 조사 과정을 무난히 넘어가기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다.
국회 관계자는 "대기업 인사들이 국회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는 것은 국회를 무시하는 처사이므로 강력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도 "국회가 마구잡이식으로 재벌 회장을 부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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