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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통계와 현대의 우연 둘러싼 철학적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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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통계와 현대의 우연 둘러싼 철학적 연대기

입력
2012.10.12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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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 과학에 기반한 근대적 세계관은 인과관계의 법칙이 지배하는 결정론이다. 우연은 설 자리가 없었다. 그것은 이성의 빛이 닿으면 사라질 미신 혹은 무지로 여겨졌다. 학자들은 자연현상뿐 아니라 인간과 사회 역시 일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고 보았는데, 통계와 통계학이 이를 뒷받침했다. 통계는 정상과 평균에서 벗어난 데이터를 오차법칙으로 분석해 패턴을 파악함으로써 우연을 '길들였다.' 반면 20세기 물리학은 세계가 결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양자물리학에 따르면 자연은 근본적으로 환원 불가능하게 확률적이다. 이 거대한 반전은 19세기에 예비됐다. 세상이 규칙적일 수는 있으나 자연의 보편법칙에 지배받지 않을 수도 있다는 관점, 즉 우연이라는 개념이 끼어들 여지가 마련된 것이다.

캐나다 과학철학자 이언 해킹(76)이 쓴 는 통계로 대표되는 결정론의 세계에서 우연으로 대표되는 비결정론의 세계로 넘어가는 서구 사상의 철학적 연대기다. 18세기부터 19세기 말에 이르는 이 여정은 근대적 세계관이 우연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당시 통계와 통계학이 철학과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 살펴서 보여준다. 근대적 사고를 형성한 통계와 우연의 관계를 파헤친 역작이다.

통계는 본래 세금 징수와 병역 부과에 필요한 근거 자료를 마련하려는 목적에서 출발했지만, 조사 범위가 확대되고 그 결과를 해석하기 시작하면서 세계관의 문제로 발달했다. 통계작업에 따른 확률론은 무질서해 보이는 현상도 법칙으로 설명함으로써 근대적 결정론은 세상의 모든 일을 해석하는 틀로 더욱 확고해졌다.

우연을 처음으로 인정한 것은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이다. 그는 전체 사회는 단순히 개인의 총합이 아니며, 전체에서는 개인에게는 없던 특성이 나타난다고 주장함으로써 결정론을 거부할 토대를 마련했다. 그 후 유전학자인 프랜시스 골턴이 나타나 결정론에 치명타를 입혔다. 그는 규칙에는 항상 우연의 요소가 있게 마련이고, 따라서 우연을 부정하기보다는 그것을 포괄하는 새로운 유형의 법칙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19세기 말 활동했던 미국 철학자 찰스 샌더스 퍼스 이야기다. 결정론의 쇠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인물로 절대적 우연의 세계를 믿었던 퍼스를 소개한다.

저자는 패러다임 이론으로 유명한 토머스 쿤 이후 현존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철학자로 꼽힌다. 미국의 저명한 출판사 모던 라이브러리는 역사적 연구에 철학적 분석을 더한 이 책을 20세기 100대 논픽션의 하나로 선정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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