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는 아이와 함께 즐기는 나들이 공간이다. 주말이나 휴일에 아이와 카트를 함께 밀며 진열된 과일이며 야채, 생선들을 소재 삼아 대화를 이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이에게 직접 상품을 비교해 고르도록 해보면 평소 아이 교육에 무성의했던 죄책감(?)도 덜고 살아있는 교육까지 하는 것 같아 뿌듯함마저 느끼게 된다.
대형마트와 대기업 슈퍼마켓(SSM)의 월 2회 의무휴업 제도가 우여곡절을 겪으며 시행 중이다. 하지만 '마트 나들이'에는 별 문제가 없다. 이 제도의 목적과 취지에 공감하는 입장에서 보면 대형마트 휴업일에는 '시장 나들이'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집 주변에 접근성이 좋은 적당한 전통시장이 없는데다 휴업일을 피해 쇼핑을 하면 되기 때문에 의무휴업 제도가 마트 나들이를 막지는 못하는 것 같다. 매주 일요일 휴업과 같은 강도 높은 조치가 나온다면 모를까, 월 2회 휴업으로는 제도의 취지와 효과를 제대로 살리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는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정책적 효과 유무에 대한 판단은 관련 기관마다 제 각각이다. 서울시가 전통시장 상인의 3분의 1 이상이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에 매상이 늘었다고 답한 조사결과를 내놓은 반면 지식경제부는 6월 한달 동안 전통시장 매출이 0.7~1.6% 감소했다고 밝혔다. 상반된 조사결과는 서울시가 시장상인 입장을, 지경부는 대형마트 납품소상공인 등의 입장을 더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대형마트들은 매출이 급감했다며 소송전도 불사하고 있다.
정책이나 제도의 현실적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 알려면 시행기간이 충분해야 한다. 특히 이익 당사자들이 많아 논란이 큰 정책이나 제도일수록 시행기간 중 결점과 오류를 찾아내어 수정해 가면서 관련자들 모두가 합의하고 만족할 만한 제도로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도 마찬가지다. 유통산업발전법은 1월에 발효됐지만 일부 대형마트들의 소송과 지방자치단체들의 조례 재개정 등의 절차를 감안하면 이 제도는 이제 시행된 지 갓 2개월여 밖에 안 된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에 제도의 실질적 혜택이 돌아가고 있는지, 그 혜택은 얼마나 되는지, 대형마트들이 정말 매출 급감으로 타격을 받는지,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탈ㆍ불법 행위는 없는지 등을 살펴보고 결론을 내리기엔 불충분한 시간이다. 때문에 지금은 이 제도가 빛을 발하도록 시행 상황을 면밀히 점검하고 제도시행상 허점을 보완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게 시급한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서울시의 미국계 유통업체 코스트코 무차별 단속은 이 제도의 좋은 목적과 취지를 퇴색시킨 실망스런 행위다. 물론 원인을 제공한 근본적 책임은 법규를 무시한 채 휴일 의무휴업을 거부하고 있는 코스트코 측에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십 명의 행정 전 분야 공무원들을 동원해 단속을 하고, 단속실적이 미미하자 다시 인원을 늘려 재단속에 나서기로 한 것은 감정에 치우친 행정기관의 폭력 행사다. 코스트코가 휴일 휴무를 따르지 않으면 관련 법규에 따라 과태료를 부과하고, 과태료 부과에도 코스트코가 아랑곳하지 않는다면 법규를 개정해 제재 강도를 높이는 것이 행정기관의 정상적 권한 행사일 것이다. 서울시의 행보는 마치 '먼지떨이 수사' '곁가지 수사'로 피의자의 범행 자백을 압박하던 검찰의 구태를 답습하는 것 같아 실망스럽다. 누가 봐도 괘씸죄에 대한 응징인데 "정당한 법 집행"이라고 강변하는 모양새도 닮았다. 서울시가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버티는 코스트코에 같은 수준으로 대응하는 것은 유치하다. 서울시가 지금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은 공룡 유통업체들을 옥죄는 것이 아니다. 휴일 의무휴업 제도의 허점을 보완해 그 과실이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으로 더 많이 유입되도록 시스템을 갖추는데 행정력을 모아야 한다. 많은 시민들이 즐거운 시장 나들이를 할 수 있도록 말이다.
황상진 부국장 겸 디지털뉴스부장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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