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12일 유럽연합(EU)을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지난 60년간 평화와 화해, 민주주의와 인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한다”고 밝혔다. EU라는 기구에 상을 준다기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50년대 이래 추진돼온 유럽 통합 노력에 상을 헌정하는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왜 EU인가
EU와 그 전신인 유럽공동체(EC)는 ‘전쟁 없는 유럽’이라는 유럽인들의 오랜 열망을 역사상 처음 실현한 시도로 평가받는다. 20세기 전반기 두 차례나 대전(大戰)의 참화를 경험한 유럽은 아예 전대륙을 정치ㆍ경제적으로 통합해 전쟁을 피하려는 구상을 시작했고 40여년의 준비 끝에 1993년 이를 실행에 옮긴다.
미소 냉전이 종식된 이후 EU는 과거 소련의 위성국이었던 동유럽 국가로까지 외연을 확장하며 유럽의 동쪽 변방이 새로운 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었던 상황을 미연에 방지했다. 동유럽 국가들은 EU 가입 조건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수용했는데 구소련 붕괴 이후의 정치ㆍ경제적 혼란을 겪던 이들 국가는 서유럽 선진국과 한배를 타고 공동으로 번영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
12개국으로 출범한 EU는 현재 27개 회원국을 보유한 세계 최대 지역공동체로 발돋움했다. 회원국간 국경 장벽을 제거하고 17개국이 같은 통화를 사용한 결과 유럽 대륙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불가능해 보였던 평화가 실현됐고 그 결과 이제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하는 이는 거의 없다.
수상을 둘러싼 논란
노벨위원회의 평가처럼 유럽 대륙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시도가 지난 60여년간 세계 평화와 인권 개선에 기여했다는 점을 쉽게 부인할 수는 없지만 왜 하필 지금 EU에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는지를 둘러싸고는 논란이 예상된다.
유럽 대륙은 2010년 그리스, 아일랜드 등에서 외환 위기가 연쇄적으로 발생한 이후 최악의 재정 위기를 겪고 있으며 그리스 등 일부 국가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을 탈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남유럽에서는 유로존 가입 이후 삶의 질이 되레 악화했다는 회의론이 팽배하고 북유럽에서는 EU를 통해 남유럽으로 국부가 유출된다는 반감이 크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결국 “잘했다”는 뜻으로 주는 상이라기보다 “앞으로 잘 하라”라는 의미로 상을 준 것이 아니냐는 논란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토르비에른 야글란 노벨위원회 위원장 역시 노르웨이 언론 인터뷰에서 “수상자를 둘러싼 논쟁을 환영한다”며 논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노벨평화상 선정국인 노르웨이가 정작 EU 가입을 두 차례나 거부했던 국가라는 점은 이번 수상의 가장 큰 아이러니다. 노르웨이는 1972년과 1994년 두 차례 EU 회원국 가입을 국민투표에 부쳤으나 모두 부결됐으며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국민 4분의 3이 EU 가입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