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금 1,000만원. 사무실이라고 해봐야 컴퓨터와 전화기 한 대, 작은 탁자가 전부였다. 2008년 문을 연 유럽인 대상 온라인 안경쇼핑몰 '다이렉트 옵틱(Direct Optic)'은 그러나 지난해 연매출 300만유로(약 43억원)를 찍었다. 직원 수는 2명에서 30명으로 늘었고, 파리, 보르도 등 프랑스 주요 도시에 오프라인 안경점도 6곳이나 냈다. 프랑스TV에 광고도 한다. 현지보다 30~40% 저렴한 가격에 안경을 공급한 게 성공 요인. 이 회사를 창업한 프랑스인 퀴델 카림(31ㆍ사진)씨는 "어머니가 800유로(약 114만원)에 안경을 맞췄다는 말을 듣고, 한국의 질 좋은 안경을 수출하면 사업성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3년 전 로저 셰퍼드(48)씨의 직업은 경찰관이었다. 뉴질랜드 경찰 외교경호부대에서 경호요원으로 일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속리산이 있는 충북 보은군에서 살면서 '하이크 코리아 대표(CEO)'라 적힌 명함을 갖고 다닌다. 하이크 코리아는 그가 2010년에 차린 외국인 대상 국내 산악 체험 여행업체. 관광 상품은 한국 산행이다. 셰퍼드 씨는 "2007년 남쪽 백두대간 735㎞ 종주하면서 한국 산의 매력에 흠뻑 빠진 게 계기였다"고 했다. 현재 그는 한국관광공사 명예홍보대사도 맡고 있다.
낯선 땅 한국에서 CEO가 된 카림과 셰퍼드 씨. 두 사람의 새 삶은 외국인창업대학과 함께 하면서 구체화됐다. 외국인창업대학은 서울시가 2009년 외국인 전용 민원센터인 서울글로벌센터 산하에 개소한 학교로 지금까지 졸업생 387명을 배출했다. 그 중 24개국 외국인 56명이 무역업, 관광업, 정보기술(IT)업, 서비스업, 요식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창업했다.
서울시 외국인다문화담당관실 양경은 주무관은 "영세 자영업자가 어렵다고 하지만 외국인들은 틈새시장을 공략해 창업에 성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거주 중국인이 즐겨 찾는 포털사이트 '펀도우 코리아' CEO도 이곳을 졸업했다. 27세 동갑내기 중국 유학생 왕준린(王俊霖), 장준카이(張津凱) 씨가 만든 이 사이트의 하루 방문자는 수 만명이다. 2008년 결혼과 함께 한국에 살게 된 일본인 니이누마 치카(30)씨는 '코코로 베이비시터' 대표로 있다. 말벗이 될 수 있는 가사도우미를 외국인 가정에 파견한다. 이 회사는 창업 두 달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외국인창업대학은 이들의 성공에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택배회사에서 쓰는 업무용 네비게이션을 만들어 일본에 역수출하는 이가와 유카(48) 씨는 "아이디어가 있어도 망설이기 쉬운데, 창업 준비부터 사업자 등록할 때까지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이 대학의 교육 과정은 실전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한국의 사업문화 ▦창업 및 투자의 절차ㆍ법규 ▦노무 관리 ▦마케팅 등 10개 과목을 하루에 2시간씩 열흘간 공부한다. 수업료는 무료. 1년에 4번(3ㆍ6ㆍ9ㆍ11월) 문을 연다. 정원은 교육 효율성을 위해 25명 내외로 뒀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필리핀어, 베트남어 등 8개 국어로 창업 상담을 해주는가 하면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와 강남 코엑스에 홀로서기를 위한 인큐베이션 사무실도 마련해뒀다. 입주기간(6개월) 동안 임대비와 관리비 없이 사무공간과 컴퓨터, 전화 등을 쓸 수 있다.
교육에 참여한 이들은 외국인 창업 활성화가 한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고 입을 모았다. 카림 씨는 "다문화사회로 접어드는 한국에서 외국인 창업은 외국인에 대한 시선을 보다 좋은 쪽으로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스티븐 맥케니 서울글로벌센터장은 "외화 유입, 일자리 창출 등 내수경기 진작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다음 외국인창업대학은 오는 11월 19일부터 30일까지 열린다. 접수는 이달 22일부터 열흘간이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사진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