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이야기는 사실의 파편들과 이 파편들의 틈을 메우는 인간의 상상에서 비롯된다. 완결된 내러티브를 갖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사실이 필요하지만, 또 한편으로 어떤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해야 한다. 인간의 역사란, 바로 이렇게 사실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로 재현되는 역사다. 문화 정체성은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왜곡, 은폐 시키는 가치 기준을 설정한다. 호미 바바는 서구 지식인 사회를 비롯해 서구를 비판한 탈구조주의 이론가, 다시 이들을 비판한 제3세계 탈식민주의자들의 문화정체성 역시 서구의 잣대로 이뤄져 있다고 지적한다.
인도출신의 탈식민주의 연구가인 저자는 가야트리 스피박과 함께 서구 지식인 사회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제 3세계 지식인이다.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같은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의 철학을 식민주의 연구에 적용시킨다. 분석은 날카롭고 문장은 시적이다.
저자의 이론을 집대성한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책은 국내 소개 10년만에 재번역돼 출간됐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