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자살 겪은 저자가 자살의 태생적 기질·심리 등 탐색기존 자살이론을 현실에 접목하고 자살하려는 이들의 육성도 담아
'고의로 스스로를 죽이는 행위' 자살. 이 책은 하루아침에 아버지를 자살로 잃은 아들이 자살에 관한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쓴 과학적 연구 보고서다. 한편 막막한 슬픔 속에서 죄책감을 느끼며 망연자실했던 개인의 기록이기도 하다.
토머스 조이너는 플로리다주립대 심리학부 교수로 각종 자살행동 컨설팅과 10여권의 관련 저서를 냈다. 책은 심리학을 전공하던 대학원생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십수년간 연구에 매달린 끝에 나온 결과물로, 2005년 미국에서 출간돼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아버지는 30대 중반에 돈과 명예를 얻은 성공한 인물이었으나 생의 마지막 몇 년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동차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왜 사람들은 자살을 택할까. 조이너는 생물학, 심리학, 사회학을 넘나들며 자기 살해로 몰아가는 개인의 태생적 기질, 심리, 사회적 분위기를 탐색해 그 답을 구한다. 기존의 자살이론들을 현실에 접목해 놓은 것은 물론 각종 통계와 자살하려는 이들의 육성이 담겨 있다. 자살한 인기 가수 커트 코베인의 유서 마지막 줄은 이렇다. "코트니, 내가 없어서 훨씬 더 행복할 프랜시스와 그 아이의 인생을 위해 기운을 내주기 바라오." 감전 자살을 선택한 한 10대 소녀는 유서에 "나는 아주 나쁜 인간이었어요. 이제 여러분들은 모두 나 없이 살 수 있게 됐어요"라고 써 놓았다.
저자는 죽음으로 이르는 길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짐이 된다는 느낌'과 '소속감 단절'이라는 구체적 기제가 있음을 발견한다. 여기에 자해를 가할 수 있는 습득된 능력이 더해질 때 자살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짐이 된다는 느낌'에서 '느낌'이라는 단어를 강조한다.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을 행사하나 유동적일 수 있는 이 '느낌'을 생존의지로 끌어당기는 것이 바로 주변 사람의 몫이다.
손목을 긋는 일이 시적이지도 않고,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는 자살시도 경험자의 고백은 그동안 낭만화되고 미화된 자살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끔 한다. 대중매체나 책, 영화 등에 나오는 낭만적 죽음이 큰 화를 부르는 촉매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은 유명인의 자살 후 모방자살이 잇따르는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고집스럽게 피가 굳어버리는 정맥들을 다시 열어젖히는 일을 지루하게 반복해야 했다. 그렇게 한 시간 이상 끈기와 인내심을 발휘하며 내 손목을 긋고 또 그었다. 죽기 위해서 내 몸과 전투를 벌여야 한다는 건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고, 최선을 다한 일전 끝에 나는 나자빠졌다."(71쪽)
수백건의 의료기록과 자살기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취재한 그는 자살을 실행하는 사람들은 그 순간, 삶과 죽음에 대해 양가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는 점을 발견한다. 곧 죽기를 원하면서 동시에 구조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자살은 심각한 사회 문제다. 10~30대의 사망원인 1위이지만 사회적 금기와 편견 속에서 아무런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극단적 선택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일단 자살하는 이들의 꼬인 감정의 실타래를 알고 이해하는 일이 될 것이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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