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둑 '최강 트리오'가 역시 이름값을 했다.
10일 대전광역시 삼성화재 유성연수원에서 벌어진 2012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본선 8강전에서 한국의 박정환, 이세돌, 최철한이 나란히 승리해 4강 진출에 성공했다. 반면 중국은 간판 스타 구리 혼자 4강에 살아남았다.
랭킹 1위 박정환은 전기 챔피언 원성진을 불계로 물리치고 첫 우승에 한 발 다가섰다. 박정환은 2010년 4강에 진출한 게 그동안 이 대회서 거둔 최고 성적이었다.
대회 사상 최초로 네 번째 우승에 도전하는 이세돌은 중국 랭킹 1위 천야오예를 가볍게 제치고 4강에 합류했다. 이세돌은 그동안 세 번의 4강 진출을 모두 우승으로 마무리했다.
랭킹 3위 최철한은 얼마 전 응씨배 결승에 오르는 등 최근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신예 판팅위와 난전 끝에 승리, 2005년 제 10회 대회 이후 7년 만에 두 번째 4강행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이 대회서 첫 8강에 오른 강동윤은 구리에게 패해 4강 진출에 실패했다. 구리는 2010년 제15회에 이어 두 번째 우승에 도전한다.
다음 달 12일부터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준결승 3번기에서는 박정환과 구리, 이세돌과 최철한이 맞대결을 펼친다. 박정환은 구리와 재작년 후지쯔배 본선에서 한 번 맞붙어 1패를 기록했고 이세돌은 최철한에게 23승 16패로 앞서 있다.
한국은 올 상반기에 열린 주요 세계 대회서 중국세에 밀려 매우 부진했지만 하반기 들어 LG배 8강에 5명이 진출한 데 이어 삼성화재배서도 준결승에 3명이 올라 다시 중국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번 16강전과 8강전에서 '80년대생'을 주축으로 하는 한국의 톱랭커들이 최근 세계 대회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중국 '90후 세대'와의 맞대결에서 전승을 거둠으로써 한국 바둑의 저력을 과시했다.
사실 이번 삼성화재배도 출발은 상당히 불안했다. 지난 8월에 열린 통합예선 결과 본선티켓 19장 가운데 중국이 12장을 따낸 반면 한국은 6장을 차지하는데 그쳤다. 한국은 대회 사상 최악의 성적이고 중국은 사상 최고의 성과였다. 특히 '90후 세대'라 불리는 중국의 10대 강자들이 무더기로 본선 무대를 점령해 한때 한국 바둑 위기설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본선 경기가 시작되자 서서히 한국 바둑의 뚝심이 되살아났다. 통합 예선 통과자에 국가 시드 배정자를 포함해 본선 32강전에 12명이 출전해 절반이 넘는 7명이 16강전에 진출했다. 반면 중국은 출전 선수 16명 가운데 8명이 16강전에 올라 상대적으로 한국보다 성적이 나빴다.
지난 9일 열린 16강전에서 완전히 형세가 역전됐다. 특히 이번 16강전은 한국의 '80년대생'과 중국의 '90후 세대'가 나란히 맞대결을 펼치게 대진표가 짜여서 더욱 관심이 쏠렸는데 경기 결과는 한국의 완승이었다.
이세돌이 최연소 본선 진출자 리친청(14)을 완파한 것을 시작으로 박정환과 최철한이 중원징과 미위팅을 잠재웠다. 전기 챔프 원성진은 중국 랭킹 2위 퉈자시를 잡았고 강동윤도 랭킹 3위 스웨에게 불계승을 거뒀다.
중국에서는 이번 16강전에 '90후 세대'가 무려 6명이나 출전해 나름대로 상당한 기대를 했지만 겨우 판팅위 한 명만 일본의 고마쓰 히데키를 이겼을 뿐 나머지 선수가 모두 한국의 톱 랭커에게 패했다. 결국 판팅위마저 8강전에서 최철한에게 져 탈락했으니 중국의 '90후 세대'가 최근 급성장하고 있지만 '80년대생'을 주축으로 하는 한국의 톱랭커들을 상대하기엔 아직 역부족이라는 게 만천하에 드러난 셈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현재 한국의 1990년대 출생자 가운데 '믿을맨'은 오직 박정환 한 명 뿐이다. 나현이 지난해 삼성화재배 4강에 올랐고 올해는 안국현이 16강까지 진출했지만 세계 정상급 기사라고 말하기는 아직 무리가 있다. 게다가 이세돌ㆍ최철한 등 한국의 80년대생 톱랭커들이 어느덧 20대 후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한국 바둑의 미래가 그리 밝은 모습이 아니다. 이번에는 그런대로 잘 넘어 갔지만 앞으로 더욱 거세게 밀어닥칠 중국 '90후 세대'의 도전을 어떻게 뿌리칠 지 바둑계의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영철 객원기자 indra36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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