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지만 스포츠에서 나이가 경기력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특히 테니스 경기에서 나이가 많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한눈 팔새 없이 파고드는 시속 200㎞가 넘는 공을 받아내기 위해 쉼 없이 코트를 누벼야 하기 때문이다. 풍부한 경험과 노련미도 체력전 앞에선 별무 효과다. 따라서 30대에 접어드는 순간 은퇴설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고정관념을 비웃듯 30대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왕성한 투어활동을 이어가는 선수가 있어 화제다. 현역 최고령 토미 하스(34ㆍ독일)를 비롯해 라덱 스테파넥(33ㆍ 체코), 로저 페더러(31ㆍ스위스), 레이튼 휴이트(31ㆍ호주), 다비드 페레르(30ㆍ스페인)가 그들이다. 이쯤 되면 고목에 꽃이 피는 형국이다.
이중 하스의 스토리가 단연 눈길을 끈다. 페더러야 각종 매스컴에서 단골 주연으로 도배될 정도로 지명도와 인기가 높지만 하스는 지금까지 이렇다 할 명함을 얻지 못했다.
하스는 1996년 프로에 데뷔해 올해로 16년째 코트에서 뛰고 있다. 단복식을 통틀어 통산 14개의 우승컵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4대 메이저 우승컵도 없고 ATP 1000시리즈 마스터스 챔피언에는 딱 한 번 올라 유명세와는 거리가 멀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단식 은메달이 하스가 거둔 전적중에 가장 빛나는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2002년엔 랭킹 2위까지 치고 올라가기도 했다. 그러나 2003년 어깨부상으로 1년이상 공백기를 틈타 존재감을 잃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하스는 올 시즌 제2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을 정도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 2010년 2월~2011년 6월까지 부상으로 개점휴업한 하스는 올 시즌 랭킹 202위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지난 8일 현재 21위로 수직 상승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가장 인상적인 플레이는 6월17일 독일 할레에서 열린 ATP 250 게리웨버오픈 결승전에서 '황제' 페더러를 2-0으로 꺾고 정상에 오른 것이다. 하스는 또 원 핸드로 백핸드를 구사할 수 있는 희귀선수로도 나름 이름을 얻고 있다. 현대 테니스의 주류가 양 손 백핸드인데 비추어보면 관중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스와 함께 페더러와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 리차드 가스케(프랑스)정도만이 한 손 백핸드 명맥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스는 11일 열린 시즌 8번째 ATP 마스터스 대회인 상하이 오픈에서 얀코 팁사레비치(세르비아)를 2-0으로 따돌리고 8강에 올라 시즌 27승(14패)째를 따냈다. 하스는 조코비치와 4강행을 다툰다.
페더러도 이 대회 8강에 합류해 통산 300주째 랭킹1위를 점하는 초유의 대기록을 달성했다. 페더러가 상하이 오픈 정상에 오르면 마스터스 시리즈에서만 22번째 정상에 오르게 된다. 또 투어 통산 77개의 타이틀을 차지하게 돼 존 맥켄로(미국)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페더러는 마린 칠리치(크로아티아)와 4강을 놓고 격돌한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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