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레프코위츠 미국 듀크대 생화학과 교수는 자느라고 하마터면 일생일대의 기쁜 소식을 놓칠 뻔했다. 10일 수상자가 발표되기 직전, 귀마개를 한 채 막 잠이 든 차여서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상위원회에서 걸려온 전화벨 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레프코위츠 교수는 "아내가 '당신 전화'라며 팔꿈치로 찌르는 통에 깼고 엄청나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세르주 아로슈 프랑스 콜레쥬드프랑스 교수는 9일 아내와 산책을 하다가 자신이 올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라는 소식을 들었다. 휴대전화 액정화면에 스웨덴 국가번호인 '46'이 뜨는 순간 그는 꿈이 실현됐다는 것을 직감했다. 아로슈 교수는 "감격에 휩싸여 움직일 수 없었다"며 "마침 벤치 근처여서 주저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노벨상위원회가 수상자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은 공식 발표 30분 전이다. 전세계의 다양한 시간대를 살고 있는 수상자들은 이 때가 아침 운동 시간일수도, 학교 강의 시간일수도, 깊은 잠에 빠진 한밤중일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한 통의 전화를 주고 받는 데에도 많은 변수가 생긴다.
1998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루이스 이그나로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 의대 교수는 발표 당시 프랑스 니스공항에서 막 이탈리아 나폴리행 비행기를 타려던 참이었다. 공항 공무원이 그를 붙잡아 전화를 바꿔줬다. 하지만 평소 농담을 잘 하던 동료가 수화기를 통해 전한 수상 소식은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이그나로 교수는 훗날 "만약 내가 수상했다면 사진이 신문이 실려 사람들이 나를 알아볼 것이라고 생각해 비행 내내 주변을 살폈지만 그런 기색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나폴리에 도착해 마중 나온 지인이 노벨상위원회의 공식 발표문을 보여주었을 때에야 그는 깜짝 놀랐다.
스웨덴의 전화를 20여 년이나 기다린 경우도 있다. 2005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배리 마셜 호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대 교수와 의학자 로빈 워런 이야기다. 두 사람은 1983년 궤양을 일으키는 헬리코박터균을 발견한 후 매년 노벨생리의학상 발표 일마다 일찌감치 술집에서 만나 맥주를 마셨다. "수상의 기쁨이 아닌 탈락의 슬픔을 나누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22년만에 드디어 그들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마셜 교수는 "워런이 전화를 받고 얼어붙었다"며 "수많은 감정이 교차해 말을 할 수 없는 것 같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노벨상위원회가 자신을 애타게 찾건 말건 상관 없이 장을 보러 나가는 바람에 전화를 받지 못한 수상자들도 있었다. 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영국 작가 도리스 레싱과 199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독일 경제학자 라인하르트 젤텐이다. 이들은 집에 돌아와 TV를 켜고 문 앞으로 몰려든 기자들과 맞닥뜨리고 나서야 자신의 수상 사실을 알았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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