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암벽 등반을 다시는 못할 거라고 했어요. 하지만 저는 지난 8월의 어느 화창한 날 71m짜리 암벽을 탔죠. 기술발전으로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경계가 낮아진 덕분입니다."
휴 헤어(48) 미국 매사추세츠대(MIT) 미디어랩 교수의 두 다리는 아주 특별하다. 뼈와 근육 대신 티타늄, 카본, 실리콘, 너트와 볼트, 12개의 컴퓨터와 5개의 센서, 엑츄에이터(구동기) 시스템으로 구성됐다. 무릎 아래는 기계장치나 마찬가지인 이른바 사이보그 다리다.
'600만달러의 사나이'로도 불리는 그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아 11일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융ㆍ복합 국제컨퍼런스 2012'에서 기조 강연을 했다. 지식경제부가 산업융합 확산과 산업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헤어 교수는 강연에서 "신경-디지털 인터페이스에 기반한 기술들을 통해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신체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연구를 하고 있다"며 "기술 발전을 통해 이번 세기에 인간의 장애는 사라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그는 강연 도중 바지를 걷어 올린 뒤 제자리 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의 다리가 처음부터 차가운 금속이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18세 때 영하의 날씨에 뉴햄프셔 워싱턴산 등정 중 조난하면서 생긴 변화다. 4일 만에 구조돼 회복했지만, 퇴원 땐 무릎 아래 두 다리를 병원에 떼주고 나왔다. 열 살도 되기 전에 3,500m 이상의 산을 오르는 등 미국 대표 등반가로 촉망 받았던 그였지만 두 다리의 부재는 꿈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그러나 헤어 교수는 "'등반가'의 꿈을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고했다. 역경을 거뜬히 극복한 것도 이런 도전정신 때문이다.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MIT에서 기계공학 석사학위를 땄고 하버드대에서 생물리학 박사학위까지 챙겼다.'600만달러의 사나이'같은 영화 속의 최첨단 의족을 만들면 등산도 충분히 가능하리라는 믿음도 강했다. 지난 여름 자신이 만든 첨단 의족으로 71m에 이르는 암벽에 오름으로써 이런 믿음을 현실화시켰다. 30년이란 긴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다시는 암벽을 탈 수 없을 것"이라는 의사의 생각이 틀렸음을 온 몸으로 증명한 셈이다.
그는 강연에서 "기계가 인간의 신체 확장을 이뤄주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강조했다. 인간의 신체와 기계의 결합으로 장애인 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들도 향상된 능력을 체험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앞으로도 계속 산에 오를 겁니다. 제가 직업란에 뭐라고 쓰는지 아세요? '운동가' 아니면 '등반가'에요."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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