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야를 막론하고 대통령 선거 공약에 정보통신부 부활이 한 꼭지씩 대개 들어가 있다. 지난 5년 이명박 정부의 실정 중 하나가 우리나라 IT(정보기술) 경쟁력이 꾸준히 하락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당시 정점을 찍은 IT위상이 꾸준히 하향 추세를 그리다가 급기야는 세계 19위까지 추락하고 말았다. 전에는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을 비롯한 갖가지 지표에서 우리의 먼 추격자였던 일본과 미국이 이제는 인터넷 보급률과 사용빈도는 물론 광통신 보급률에서도 우리 보다 훨씬 앞서 가고 있는 현실이다. 이제는 더 이상 우리가 IT강국이라는 명함을 내 밀수 없는 처지가 됐다.
그러나 이 정권에 들어와서 IT성장이 좌초된 문제의 해법으로 정보통신부를 부활시켜 콘트롤타워를 설치라는 주장은 극히 피상적인 시각이다. 우선 5년 전, 정보통신부를 폐쇄시킬 때를 다시 한 번 돌아보자.
TDX, CDMA의 개발과 상용화, 이동통신과 초고속통신망의 폭발적 성장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통신산업 발달의 중추적 역할을 했던 정통부의 경쟁력은 그 수명을 다 하고 있었다. IT 중심산업으로 자리잡은 소프트웨어 산업은 10여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처의 관료적이고 구태의연한 정책운영으로 활로를 찾지 못하고 질식됐다. 아이폰의 모태 역할을 한 아이포드는 사실 MP3기술에 기초를 두고 있고 당시 이 기술의 선두 기수는 한국회사였다. 중앙집중적인 규제체제는 산업혁신에 동맥경화를 일으켜 토속 기술로 자랑하던 DMB나 WIBRO는 빛도 보지 못한 채 세계무대의 변방으로 밀려났다.
사실 방송통신위원회의 출범은 정보통신 업계의 오랜 숙원의 결실이었다.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방송과 통신의 융합에 우리는 디지털방송 방식의 선택부터 시작해서 사사건건 어려운 갈등조정 과정을 거쳐 뒤늦게 도달한 일정표인 것이다. 이러한 방통융합의 대세를 다시 돌이킬 수는 없다.
사실 콘트롤타워가 없는 것이 아니라 콘트롤타워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문제다. 사람은 있는데 비전문가가, 제사보다는 젯밥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이 콘트롤하고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진정한 IT의 문제는 제쳐 놓고 비전문가의 리더십에서 무리하게 진행된 방송의 개방은 애초의 모든 장밋빛 주장이 엉터리였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 외에도 이동통신이 대세인 마당에 주파수 활용의 로드맵도 없이 경매를 실시해 통신사들을 묻지마 입찰로 몰고 가고, 서민을 위한 통신료 정책도 없이 선거 때만 되면 즉흥적으로 통신사들을 압박해 왔다. 전문성과 도덕성이 결여된 인사로 산하기관장 자리를 채웠을 뿐 아니라 게임과 교육을 적대적 관계로만 치부하는 편협한 사고방식 등 비전은 물론 정책의 일관성도 합리성도 없이 시장을 혼돈시킨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애플과 삼성은 지금 스마트폰 시대의 주도권을 놓고 피 튀기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스티브 잡스의 일대기를 읽어 보면 아이포드에서부터 시작해서 아이폰, 아이패드를 출시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어떤 정부부처를 찾아가 어떤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600여 페이지에 걸쳐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싸워야 할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콘트롤타워가 필요조건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정통부가 없어진 지난 몇 년간 업계 인사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바로 "어떤 사안에 대해 무슨 부처를 찾아가서 설명을 해야 할지 몰라 불편하고 막막하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우리 업계가 정부의 의중을 따라 일하는데 익숙해져 있고 정부라는 진행요원의 신호가 없이는 아무런 일도 저지를 줄 모르는 관치경제의 틀에 갇혀 있는 것이다. 이래 가지고는 IT의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없다. 과거 정통부와 같은 콘트롤타워의 추억과 환상에서 벗어 날 때다.
이용경 카이스트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 교수·전 KT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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