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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10월 12일] 애국심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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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10월 12일] 애국심 시즌

입력
2012.10.1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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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여러 면에서 애국심이 발현되는 시즌인 듯하다. 대선을 앞두고,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자기 입장을 피력하는 사람들의 뜨거운 모습이 특히 그렇다. 때는 시월이니, 국군의 날과 개천절과 한글날마다 온갖 매체가 차례차례 애국하는 마음을 표했다. 얼마전 시청광장에서 열린 싸이의 공연에서도 우리들은 애국심을 표출했고 목격했다. 애국심이 바야흐로 시즌을 맞은 듯한 나날들이다.

한글날의 일이다. 한 아이가 내게 질문을 해왔다. "작가가 꿈인 학생인데, 저 같은 사람은 한글에 대한 애정이 반드시 유별나야 하나요. 저는 그렇지 않아서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어요. 글쓰는 사람은 한글에 대한 애정이 깊어야 할까요?" 이 질문을 받았을 때, 그의 고민이 소중하고 반가웠다. 모두가 자긍심을 갖는 절대적인 것을 의심하고 회의하는 태도가 소중했다. 주입된 대로 사고하지 않고, 주체적인 단독자로서 숙고하고 있다는 게 반가웠다.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객관적 판단과 그것에 대한 자부심은 별개의 것일 수 있다. 자부하는 자는 반성과 비판을 멈춘 채로 자긍심을 향해가고, 회의하는 자는 반성과 비판을 통해 문제점을 보완하고 수정하려는 에너지가 될 수 있다. 세상을 바꾸려는 에너지는 우리가 모두 익숙하게 믿어온 것들을 다르게 보는 시선에서 출발된다.

싸이의 공연에 8만 명의 관객이 몰려들어 축제를 즐겼다. 서울시는 지하철 운행시간까지 연장하며 이 공연을 치렀다. 싸이에게 우리는 애국자의 모습을 발견했다. 애국자의 모습을 발견한 것인지, 애국자의 모습으로 변모된 것인지, 애국자의 모습을 덧씌운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한국사람의 창작물을 전세계 사람들이 열광해준다는 건 기쁜 일이지만, 그것과 애국이 어느 정도로 긴밀한 연관성이 있을까. 단지 개인의 성공일 뿐인 것들도, 세계적으로 알려지면 그것이 국가를 위한 것이고 애국의 길이 될까. 태극마크를 유니폼에 새겨넣고 그라운드를 누리는 축구선수도 아니고, 우승을 하고 태극기와 애국가가 전세계에 울려퍼지게 한 김연아 선수도 아닌, 싸이를 통해 우리가 애국을 운운한다는 건, 아무래도 오버센스 같기만 하다.

나는 한국인이지만,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이 조금 부족한 상태다. 한국인이라는 안정감이 확보돼 있지 않은 한,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나는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 중에서 스물세 번째 죽음이 발생했다. 필자의 아버지도 1980년대에 정리해고를 겪고 평생을 가난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계시다. 매주 노숙인들에게 글쓰기 특강을 하러 가는 나는, 이 사회가 얼마나 잔인하게 인간을 부품화하고 내팽겨쳐버리는지를 노숙인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실감하며 집에 온다. 싸이의 '말춤'과 '오빤 강남 스타일'이라는 너스레에 공허함만 느낄 뿐이다. 잠시, 현실을 놓고 가볍게 놀면서 이를 즐길 수는 있겠다. 그렇지만, 즐기지 못한 채로 공허를 곱씹으며 삐딱하고 비판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도 하나의 권리이고 하나의 입장이다. 싸이에 대해서도 모든 한국인이 열광할 필요는 없다.

한글에 대해서도 모든 한국인이 자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한글이 정말로 우수하다면 수많은 외국어와 외래어의 침윤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살아남을 것이고, 싸이의 창작물이 정말로 우수하다면 수많은 비판과 이견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살아남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의 급조된 이번 싸이 공연은 시의 지나친 과보호이자 편애이며, 싸이에 열광하던 대중의 정서를 애국심으로 과도하게 이어붙인 언론도 과대포장에 지나지 않는다.

월드컵때 축구에 반감을 표하는 것은 금기에 가까웠다. 지금, 싸이에 대해서도 반감을 표한다는 것은 반애국자 취급을 받기가 십상이다. 하물며 한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회의하기를 대외적으로 한다면? 내게 질문을 건넨 아이에게 이 글로 나는 답을 하고 싶다. 그리고 말해두고 싶다. 과도한 자부심으로 나라 사랑을 과시하는 사람보다 독한 의구심으로 나라 사랑을 더디게 구체화하는 사람이 더 많은 나라, 그 나라를 꿈꾸며 살자고.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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