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몸살로 명절 끝무렵부터 내내 좀 앓고 있다. 밥맛이 없어 잘 챙겨먹지도 못했는데 왜 난 겉보기에 마르고 흰 나무젓가락처럼 병약한 몰골이 아니될까. 우리 씩씩이, 우리 건강이, 예뻐해주는 어르신들이 전화를 걸어올 때면 아픈 척은 간 데 없고 두 얼굴이 되어 기차 화통 삶아먹은 소리를 내는 나.
혼자 살면서부터 가지게 된 이 두 얼굴의 교차 순간을 언젠가 몹시 냉하게 바라보면서 떠올린 게 가족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인데 왜 내 고통을 내 상처를 아무런 죄의식 없이 그들에게만 풀고 살았을까, 내 짜증의 세숫대야를 그들의 얼굴로 삼아왔을까.
종종 대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생긴다. 남녀 불문하고 1학년 때부터 먹고살 걱정이 커서 그런가 웃음기가 그리 해맑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우리 때만 하더라도 뜬구름 잡는 일에 목숨을 걸고 헛바람 맞는 일에 기꺼움이 있었다만 요즘은 강의가 끝나면 다들 어디론가 바삐 사라지는 청춘들.
그러나 그런 그들을 주저앉히는 유일무이한 힘은 또한 가족에서 나오거늘, 얘기를 들어보면 집안을 일으키겠다는 신념으로 가득찬 효자 효녀는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은지. 가족의 붕괴로 인한 별별 사건 사고들이 빈번하다지만 여전히 나는 이 사회의 힘이 가족이라 믿는다. 어려서도 엄마, 늙어서도 엄마, 아플 때마다 엄마 밥만 먹으면 힘이 불끈 솟는 무한 괴력의 소유자들이 바로 우리니 말이다.
김민정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