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시탈' 제작과 관련해 불의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신 (보조출연자)박희석님의 명복을 빕니다. 갑작스런 사고로 가장을 잃은 유가족에게 다시 한 번 심심한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사고 관계사들의 후속 처리가 미흡했던 점에 대해 제작진은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평균 20%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지난달 6일 종영한 KBS 드라마 각시탈 마지막회에 방송사 측은 이런 내용의 이례적인 애도 자막을 내보냈다. 포털 사이트엔 '각시탈 자막'이 검색 순위권에 올랐다. KBS는 개국 50여년만에 보조출연자 대기실을 만들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이런 '성과' 뒤에는 서울 여의도 KBS 앞에서 석달 넘게 '방송사의 진심 어린 사과'와 '보조출연자 대기실 마련'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한 윤소영(41)씨가 있다.
그의 남편은 숨진 박희석(50)씨다. 박씨는 4월 경남 합천 촬영장으로 가던 중에 버스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다. 30여명의 보조출연자들이 타고 있던 버스에서 유일한 사망자였다. 하지만 윤씨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슬퍼하기도 전에 관계사들의 태도를 보며 분통을 터뜨려야 했다.
"방송사, 외주제작사, 보조출연자 공급업체, 버스회사 모두 남편의 죽음에 '우리는 법적 책임이 없다'며 책임 회피에 급급했어요. 남편이 일을 하러 가다 사고가 났으니 당연히 산업재해 판정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다들 '보조출연자는 근로자가 아니라서 힘들 것'이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남편은 죽음 앞에서까지 '단역' 이었다. 윤씨는 화가 났다. 무작정 피켓을 들고 KBS 앞으로 달려가 1인 시위를 시작했다. 드라마 제작발표회장에서 항의도 했다. 두 딸도 틈날 때마다 엄마 곁을 지켰다. 이게 5월 일이다. 그는 1인 시위와 함께 산재 인정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보조출연자들의 산재 신청 자체가 드문 일이라 촬영 스케줄이나 급여 내역 같은 증빙 서류를 구하는데도 공을 들여야 했다. 윤씨는 "보조출연자들은 일하다 다쳐도 일감을 쥐고 있는 용역업체를 의식해 그냥 참고 일하는 게 현실"이라며 "교통사고로 부상한 나머지 보조출연자들은 아무도 산재 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근로복지공단이 지난달 박씨를 근로자로 인정해 산재 판정을 내린 것이다. 보조출연자 사망사고를 산재로 인정한 첫번째 사례다.
그의 외로운 싸움은 7만여명의 다른 보조출연자들의 처우 개선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고용노동부가 박씨의 산재 인정을 계기로 이번 달부터 모든 보조출연자들이 산업재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윤씨는 지난달 24일부터 사고 당시 남편을 고용한 보조출연자 공급업체에서 다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기획사가 사과할 때까지 시위를 계속할겁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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