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자들은 다른 환자들에 비해 치료결정권이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전문가나 가족에게 거의 의존하죠. 어떤 치료를 받을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해요."
국내 정신과 의료기관 가운데 유일한 세계보건기구(WHO) 협력기관인 용인정신병원의 황태연(50) 지역정신보건부장은 환자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게 자의 입원을 늘일 수 있는 궁극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병을 앓는 환자들은 가족과 함께 미리 의학정보를 파악하고 적합한 치료법을 의사와 적극적으로 상의하는 반면, 정신질환자는 자신은 물론 가족도 병을 숨기기 바쁘다. 이런 상황에선 제대로 된 치료를 기대하기 어렵다.
"환자도 가족도 병에 대해, 약에 대해 잘 알아야 해요. 그래야 어떤 치료를 받을지 결정하려는 동기가 생기죠. 세계정신의학회(WPA)도 환자와 가족의 의견을 치료에 적극 반영하라고 권고합니다. 그래서 우리 병원은 환자 임파워먼트, 패밀리 링크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환자와 가족을 교육시키는 강사들을 양성하고, 그들 덕분에 잘 회복된 환자들이 새로운 환자들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품앗이 프로그램이다. 전국 지역정신보건센터와 함께 환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교육도 진행한다.
"이렇게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환자들 사이에선 일종의 자조집단이 만들어져요. 어느 정도 회복돼 직장을 잡은 환자가 다른 환자를 일터에 소개해주기도 하고, 취미 모임도 만들면서 지역사회에 자연스럽게 다시 섞이게 되죠."
장기입원 하지 않고 환자들 스스로 사회와 어울려 지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입원을 하느냐 마느냐는 서구 시각으로 보면 개인의 권리에요. 가족을 비롯한 보호자의 동의만으로 입원할 수 있게 돼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중국밖에 없죠. 문화적인 차이라고 봐요. 이게 악용되지 않으려면 환자와 가족을 도와줄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충분해야 합니다. 지역사회가 환자를 함께 돌본다는 개념이 확대돼야 하고요."
황 부장이 4년여 준비 끝에 2003년 WHO 협력기관으로 지정받는 걸 주도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의료공급자 중심에서 환자 중심으로 바뀐 WHO 정신보건 프로그램의 장점을 도입해 우리 방식으로 발전시킨 다음 아시아 다른 나라에 전파하겠다는 계획도 있다. 실제로 아시아 의료진 교육훈련 비용으로 WHO에서 매년 8,000달러씩 지원받는다.
"최근엔 병원 근처 용인시와 서울 천호동에 환자전용 단독주택도 마련했어요. 정신질환 치료 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 전 잠시 재활훈련이 필요한 환자들을 위한 중간거주시설 개념이죠. WHO 협력센터로서 앞장서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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