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이촌동에서 시인 정현종 선생님을 뵈었다. 손녀뻘 되는 까마득한 후배에게 이거 먹을래 저거 먹을래 물으시더니 운동화에 날개 단 듯 앞서 걸으시던 선생님. 먹자 하신 단골 냉면집은 댁 근처 시장통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위경련 뒤끝이라 많이 못 먹을 것 같아요, 내심 엄살이었는데 냉면 한 그릇을 물김치 한 사발인양 마셔버린 나, 예의 허, 허, 허, 하는 웃음소리를 크게 내시며 설렁탕을 드시는 선생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깍두기가 듬뿍 담긴 접시를 가져다주며 식당 아줌마가 말했다. 교수님, 왜 이리 뜸하셨어요.
단골 밥집이야 알아보는 게 당연, 그러나 시장 입구 모슬포산 모시조개를 파는 아저씨도 친환경 매장에서 전병을 파는 아줌마도 만나서 반갑다고 짝짝짝이시니 우와 이 동네 어딜 가도 대접받는 기분인걸요. 선생님은 새삼스럽게 뭘, 하셨지만 살짝 어깨가 쫙 더 펴지신 것도 같았다. 안다, 안다, 다 안다, 의 귀여운 으쓱함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본토박이라고 해서 모두가 그런 앎이 되지 않는 것이 걷는 내내 기웃기웃 사람과 사물과 계절을 두리번거리며 살피시는 시인의 눈을 포착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내가 도미의 가격을 볼 때 그 도미의 눈을 살피는 시인의 직관, 그 순간적인 판단의 기미... 무릇 정치를 함에 있어 어른들이라 할 이들도 이것만은 닮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어릴 적 바지런하기로 소문난 우리 동네 통장 반장들 발냄새 고약했는가 몰라.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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