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규(77)씨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자 가족들 사이에서 '우편배달부'로 불린다. 러시아 사할린으로 강제동원 된 한인들이 보내오는 편지를 국내에 있는 가족에게 전달하는 일을 맡아와서다. 1990년 한국과 러시아(구 소련) 국교 정상화로 편지 왕래가 가능해 질 때까지 강제동원자 가족들에게 박씨는 유일한 소식통이었다.
"일본을 거쳐 사할린에서 온 편지를 국내 주소로 하나하나 다시 보냈죠. 강제징용자 상당수가 외진 시골출신이라 그런지 반쯤은 반송돼 왔어요. 그러면 편지에 나와 있는 주소로 찾아갔어요. 면장 앞으로 편지도 여러 통 썼어요. 남은 가족들의 생사라도 알려 달라고."
공무원이었던 박씨가 이 일을 하게 된 건 선친 박노학씨도 강제동원자였기 때문이다. 박노학씨는 태평양전쟁으로 일본의 전시동원이 극심하던 1943년 사할린으로 노동자로 갔다가 한국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되자 사할린에 와있던 일본인과 결혼했는데, 1958년 일본 정부의 자국민 귀환 정책으로 일본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 박노학씨는 이후 강제동원자들이 쓴 편지를 국내에 전달하면서 사할린 한인의 한국 귀환운동에 여생을 바쳤다.
"사할린으로 간 아버지의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는데, 어느 날 일본에서 편지한 통이 왔죠. '아들아 잘 지내느냐, 보고 싶다'고. 그 때 아버지는 이미 강제동원자들의 편지를 국내로 전달하는 일을 하고 계셨어요. 도쿄에 있는 박노학씨에 편지를 보내면 가족들을 찾아준다는 소문이 나면서 우즈베키스탄, 중국 등지에 흩어져 있던 강제동원자까지 편지를 보내왔죠."
박씨 부자가 우편배달부를 자처하면서 생사여부도 확인하지 못했던 많은 강제동원자가 가족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박씨 부자가 한 일이 주목 받는 이유는 또 있다.
아버지 박씨는 한ㆍ러 수교를 보지 못한 채 1988년 세상을 등졌다. 하지만 강제동원자들이 보내오는 편지를 바탕으로 주소와 가족관계 등 강제동원자 6,000명의 신상 정보를 기록하는 명부를 만들었는데, 강제동원 사실을 부인하던 일본을 꼼짝 못하게 하는 거의 유일한 역사적 기록이 됐다. 방일권 한국외국어대 중앙아시아연구소 교수는 "강제동원자 개개인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록으로 '사할린 판 쉰들러리스트'라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식민지 시절 강제동원에 끌려간 한국인의 숫자는 연인원 780만 명. 중복 동원된 사람을 제외하고도 300만 명이 강제동원 피해를 입었고, 이 중 절반 가까이가 러시아 중국 동남아시아 등 한반도 밖으로 끌려갔다. 일본 정부는 지금도 이들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외면하고 있다.
그나마 우리 정부가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및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지원위원회(이하 위원회)를 만들어 지난 7년간 피해 조사를 거쳐 일부 위로금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위로금을 받은 이는 피해자 신고를 한 22만여명 중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박씨는 "개인들은 일본이 숨기고려 한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쓰는데, 정부가 역사 청산에 소극적이라고 살아생전 아버지가 늘 안타까워했다"라고 말했다.
"누구누구에게 얼마의 지원금을 주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99% 완료 됐으니 끝내자는 발상은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이름 없는 단 한 명의 피해자가 남았더라도 이들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일본을 향해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 중요한 국가의 역할이자 의무 아닐까요."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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