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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9월 25일] 거짓을 주문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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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9월 25일] 거짓을 주문하지 말자

입력
2012.09.24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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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때 그랬잖아.", "내가 언제?" 많은 다툼이 기억에 관한 이런 심상한 대화로부터 시작한다. 수십 년을 함께 산 부부 사이에도 같은 일을 다르게 기억한 탓에 다툼을 벌이는 일이 드물지 않다. 아무리 명백한 사건이라도, 사람에 따라 기억하는 방식과 내용, 밀도가 같지는 않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중심에 두고 사건을 해석하며 그 해석이 개입된 사건의 내용을 기억한다.

이른바 '인혁당' 관계자에 대한 사법살인 '사건'만 해도 사건은 하나이나 이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의 기억은 하나로 수렴될 수 없다. 처음 사건을 기획한 사람, 그 기획에 따라 사람들을 잡아 고문하고 조사한 사람, 조사 결과를 넘겨받아 기소한 사람, 증거자료의 숱한 허점들을 외면하고 사형을 선고한 사람, 선고 후 18시간 내 사형 집행이라는 유례없는 지시를 묵묵히 이행한 사람, 담당 군목(軍牧)으로 차출되어 현장에서 피해자들이 사형당하는 모습을 지켜 본 사람, 시체를 유가족에게 인계하지 말고 화장하라는 명령을 성실히 수행한 사람, 한 번만 만나게 해달라고 울부짖는 사형수 가족을 밀쳐 낸 사람 등.

이들의 기억 속에서 이 사건은 다 다른 의미를 갖고 있을 것이며, 그들 각각의 '과거사'에서 점하는 비중도 다 다를 수밖에 없다. 누구는 꼭 필요했던 일로, 누구는 불가피했던 일로, 누구는 가슴 아픈 일로, 또 다른 누구는 의심스런 일로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이들에게 이 사건은 자기 '과거사'의 여러 에피소드 중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평소에는 까맣게 잊고 살다가 특별한 계기에 불쑥 되살아나는 기억들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 사건의 직간접 관련자들 중에도, 이에 관한 기억을 자기 과거사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로 분류해 놓은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반면 피해자 유족들에게는 애초 이 사건의 '진상'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그들이 기억하는 '사건'은, 자기 남편이, 또는 아버지가, 느닷없이 집에서, 직장에서 잡혀간 뒤 법정에서 초췌한 모습을 잠시 보여주고는 몇 달 뒤 뼛가루가 되어 돌아왔다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이 사건에 관한 기억들은 그들의 삶과 의식을 수십 년 동안 지배해 왔고, 죽을 때까지 떠나지 않을 것이다.

소위 '인혁당 관계자'에 대한 사형 선고와 집행은 당시에도 '사법살인'이라는 국제적 비난을 받았고, 대법원의 재심 판결로 그 진상이 대부분 밝혀졌지만,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원칙에 기초한 평가와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스스로 제3자의 위치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여러 다른 기억 중 하나를 승인하거나 여러 그들을 조합해 자기만의 기억을 만들 수 있다. 그것은 개인이 선택할 문제다. 과거의 수많은 사건들 중에서 기억해야 할 것과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을 나누고, 각 기억 요소들의 중요도를 평가하며, 그에 고유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역사관'이다. 그래서 역사관에는 각자의 경험, 이해관계, 지식, 가치관이 담긴다. 역사관은 기억에 관한 가치관이며, 인생관 자체다.

박근혜 후보가 과거사 인식에 대해 국민과 공감하겠다고 밝혔다. 인생관 자체를 바꾸겠다는 선언이다. 공자는 나이 40이 되어 불혹(不惑)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술회했지만, 그 말이 아니더라도 살아온 세월이 길고 지나간 사건에 관한 기억들을 조합하는 나름의 방법을 체득한 사람이 갑자기 인생관을 바꾸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박 후보는 이미 '두개의 판결이 있다'는 발언 등을 통해 5ㆍ16과 유신, 인혁당 사건을 보는 관점을 압축적으로 밝혔다. 그의 역사관을 비난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에 동의하는 사람도 많다. 남다른 자리에서 남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온 사람이 남다른 역사관을 갖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남다른 역사관을 가진 정치인이 자기 역사관을 그대로 드러내고 당당하게 평가받겠다는 것은 결코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여론의 눈치를 살펴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겠다고 하는 것은, 세상을 속이고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그것은 잘못이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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