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대소변조차 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다슬기 껍질을 까는 작업은 애초부터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나무 판 위에서 밀가루를 만지는 손동작에만 6개월이 걸렸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게 되자 밀가루 반죽에 도전했다. 시간이 갈수록 손놀림이 빨라졌고, 결국 조그만 다슬기 구멍 안에 정확히 핀침을 꽂을 수 있게 됐다.
1년 6개월여 만에 다슬기 껍질까기 달인이 된 충북 제천지역 중증 장애인 20명의 이야기다.
혼자 거동은커녕 대소변조차 처리하지 못했던 이들은 이제 어엿한 사회의 일꾼이 됐다. 매일 제천장애인종합복지관에 나와 일을 하고 한달 30여 만원의 월급도 받는다.
집에만 박혀 지내던 이들을 밖으로 끌어낸 것은 충북도의 중증장애인 일감지원 사업이다. 이는 일선 장애인복지관이 지역 기업체에서 일감을 찾아 중증장애인들에게 가져다 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충북도는 전국 최초로 중증장애인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지난해 초 정책지원단을 구성한 뒤, 시군 복지관을 통해 일자리 마련에 나섰다. 일터는 복지관에 마련하고, 직업 훈련은 직업재활팀원 등이 도왔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도내 239개 업체에서 14억원 어치의 일감을 만들어냈다. 일감은 포장지 접기, 수건 접기, 비닐벗기기, 고추 빻기 등 다양하다. 현재 189명의 중증장애인들이 숙련도에 따라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중에는 17년 동안 단 한 번도 집밖으로 나온 적이 없는 이도 있다.
예상치 못한 성과도 얻었다. 작업 숙련도가 높은 46명이 빨래방, 김치공장 등 기업체에 정식으로 취업한 것이다. 이들은 월 100만원이 넘는 급료를 받고 있다.
중증장애인 일감지원 사업은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중증장애인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할 것이란 사회적 편견을 깨트렸고 해당 장애인과 가족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줬다는 평가다. 특히 중증장애인 돌봄 효과 등을 고려해볼 때 30억원 정도의 예산절감 효과까지 거둬 저비용 고효율 복지정책이란 평가도 받았다.
충북도는 이 사업 시행으로 최근 정부합동평가 보건복지사업 지역특화부문에서 전국 최우수로 선정돼 시상금 2억원을 받았다.
최정옥 도보건복지국장은 "이 사업을 통해 그들(중증장애인)도 기회만 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중증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뜨린 이 사업이 전국 지자체로 확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덕동기자 dd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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