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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9월 25일] 사과를 사과하게는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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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9월 25일] 사과를 사과하게는 말기

입력
2012.09.24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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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준다기에 사과를 기다렸다. 사과! 얼마나 붉고 얼마나 예쁘고 얼마나 짠하고 그리하여 얼마나 사람스러운 말인가. 사람은 누구나 사람에게 잘못을 할 수 있고 사람은 당연히 사람에게 사과할 일이 생긴다. 우리가 그 사과를 받아들이는 건 한 가지 경우뿐이다.

이를 앞두고 온몸이 떨리고 아팠는가 하는 진심의 여부. 진실된 마음을 증명하는 건 어떠한 수치로도 불가하다. 오롯이 느끼는 자의 몫이니까. 차라리 안 하는 것만 못한 사과가 있다. 이른바 척에 불과할 때, 어떤 목적을 이루고자 그러함직하게 흉내를 낼 때, 그러나 귀신같이 그 장난을 알아채는 우리.

사과의 경우 손에 쥐고 망설일수록 무르고 푸석해지고 그 빛깔도 고유의 붉음을 잃어가는 바, 외형은 그대로인 듯하나 이미 그 맛이 바람 든 무보다 덜한 사과 하나를 받아들고 왜 이리 찜찜한지 모르겠다. 치사한 마음마저 드는 건 애초에 안 줄 마음이었다는 것조차 일찌감치 알아차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과 하니 떠오르는 일 하나. 고등학교 3학년 때 내가 떠들었는데 내 짝꿍이 그런 줄 알고 잘못 본 선생님이 일으켜세워 냅다 때렸을 때, 사실은 제가 그랬어요, 라고 선생님을 막아서지 못한 일. 두고두고 사과해야지 작심했는데 짝꿍은 일찌감치 세상을 등져버리고 말았다. 그로부터 5년은 더 흘러 짝꿍을 뿌렸다는 정동진에 가 미안했어, 라고 사과한 나. 죽고 난 뒤 사과가 무슨 소용이랴.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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