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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투자설명회 '인문학형 강좌'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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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투자설명회 '인문학형 강좌'가 뜬다

입력
2012.09.2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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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가 투자설명회는 그 시대 자산시장의 흐름과 특징의 축약판이다.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불거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 등 증시가 굴곡을 겪을 때마다 증권사들은 투자설명회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을 살피며 투자방식의 변화를 꾀했다. 그래서 당시 투자설명회 인기강사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투자의 맥락을 짚고 전략을 짤 수 있다. 재야고수에서 시인까지 시대별 투자설명회 인기강사 변천사를 살펴본다.

난세엔 재야고수들이 무림에 나서듯, 2008년 증시 암흑기가 계속되자 비제도권 증시 전문가들이 속속 투자설명회에 등장했다. 무극선생(이승조) 원형지정(황호철) 홀짝박사(김문석) 선우선생(남상용) 쥬라기 등 이름마저 무림의 그것과 닮은 재야고수들이 대표적 인기강사들이다. 화려한 입담과 검증됐다고 알려진 투자수익, 명쾌한 종목 추천 등으로 신중할 수 밖에 없는 제도권 전문가들을 제치고 재야고수들이 인기를 모았다.

증권사들은 인지도 높은 '족집게' 강사를 초빙해 증시 폭락으로 구긴 체면과 식어버린 고객의 사랑을 만회하려 했다. 당시 원형지정이 강원도에서 진행한 투자설명회엔 10만원의 참가비에도 불구하고 1,000명이 신청을 했다는 얘기가 아직도 증권가의 전설로 떠돈다.

뿔뿔이 흩어져 각자 '비기'(秘器)를 뽐내던 재야고수들이 한데 모여 리서치센터(새빛인베스트먼트)를 세우고 분석보고서를 정기적으로 낸 것도 이즈음이다. 그러나 재야고수들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일부는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구설을 피한 재야고수들은 설명회를 떠나 온라인, 증권TV방송 등으로 옮겨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빈 자리는 자산운용회사 대표들이 메웠다. 폭락장을 겪으면서 똑똑해진 투자자들은 단순 종목 추천이 아닌 기업에 대한 더 정확한 정보, 업종 현황, 글로벌 경제의 흐름을 원했다. 2009년 3월부터 증시가 반등을 시작하자 제도권 주식전문가들의 입지가 공고해졌다.

특히 투자자문사들이 뜨면서 박건영 브레인 대표, 김영익 창의투자 대표 등이 단골 강사로 활약했다. 덩달아 자문형랩 상품도 인기를 끌었다. 교회 부흥회 방식에서 벗어나 10명 안팎의 VVIP만 참석하는 단출한 형태의 설명회도 등장했다. 유럽 재정위기가 세계 경제를 서서히 짓누르던 지난해엔 전병서 경희대 교수 등 중국통이 인기강사 대열에 합류했다.

올 들어 다시 위기의 골이 깊어지자 증권사들은 새로운 강사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주식위탁매매와 펀드 판매론 승산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은퇴와 절세 등 자산관리를 전략 포인트로 삼으면서 강사진은 채권, 세무, 부동산전문가 등으로 다양해졌다.

구태의연하던 설명회 명칭도 'OO세미나' 'OO학교'로 바뀌고 있다. 은퇴 전후 삶과 건강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금융투자와는 전혀 상관없는 문화 예술 의료계 인사들이 강사로 등장하기도 한다. 김홍신 교수, 박범신 작가, 신달자 시인, 김병준 변호사 등이 대표적이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강연 내용도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 '부부 행복과 소통의 기술' '중년, 안부를 묻는 세 가지 방법' 등 인문학 강좌를 방불케 한다. 심지어 최근엔 애완견 관리 세미나까지 등장했다.

증권사 관계자는 "증시가 부침을 거치면서 투자의 키워드가 돈을 버는 종목 추천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자산관리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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