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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5. 하늘과 땅과 사람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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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5. 하늘과 땅과 사람 <126>

입력
2012.09.23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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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송 날짜가 정해지자 신통은 마지막으로 전옥서로 서일수 접견을 가서 그동안의 일을 대충 귀띔해주었다. 경기도계를 벗어나 충청도 접경에 이르러 어디서 풀려나는 게 좋은지 은밀히 논의하니 서일수가 생각해보고 진천쯤이 좋을 거라고 결정했다. 신통은 유배자의 조카로 귀양지에 이르기까지 죄인을 뒷바라지하고 그가 달아나면 책임을 진다는 약서를 내고 동행하기로 되었다. 사대부나 벼슬아치가 유배 가면 그의 하인이나 노비가 길양식을 지고 따라가는 일이 흔했던 것이다. 아침 일찍 금부의 나장 한 명과 나졸 두 사람이 전옥서에서 죄인 인수를 받아 출발했는데 서일수의 주뢰형을 받은 다리가 아직 낫지를 않아서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었다. 원래가 죄인의 호송에는 각 지방의 역이 책임을 지게 되어 있어서 한강을 건너 양재역에 이르러 간신히 역마를 구하였다. 걸음이 늦다고 투덜거리던 나졸들도 기분이 한결 편해진 모양이었다. 수원 가서 하루 묵었고 이튿날 안성을 넘어가 진천에 당도한 것은 짧은 해가 저물어 사방이 어두워진 저녁이었다. 숙소를 잡기 전에 나장이 슬그머니 뒤로 처지더니 신통과 나란히 걸으면서 말했다.

여기쯤이라고 들었는데, 이제 근기(近畿) 도계를 넘었으니……

아 예, 여기서……

신통이 짊어지고 있던 행담을 벗어 이백 냥 꿰미를 내주었고 나장은 아무 말도 없이 건네받고는 앞서 걷던 나졸들에게 일렀다.

짐을 내려라.

나졸들은 대번에 알아듣고 역마에 태웠던 서일수를 부축하여 내려주고는 뒤도 안 보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미 판결도 떨어졌고 유배지의 죄수 인수서 한 장만 첨부되면 끝나는 일이라 금부의 담당 서리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었다. 이신통은 서일수의 옆구리를 끼면서 말했다.

자아, 조금만 더 걸읍시다.

잠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두리번거리던 두 사람은 관원들이 사라진 곳과 반대 방향으로 절뚝이며 걷더니 그들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진천에 서 지사님이 수도하던 절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는 박 선비의 긴 얘기 중에 일부러 끼어들며 말을 돌리고자 하였다. 박도희 선비는 문득 말을 끊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벌써 방 안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것을 보고는 우리에게 말했다.

허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두 분 시장하시겠소이다.

내가 눈짓하여 안 서방이 밖으로 나가서 세마에 싣고 온 부담에서 길양식을 꺼내어 부엌으로 갖다 준 모양이었다. 아들이 방문 앞에 와서 아버지에게 고했다.

안 받겠다는데도 기어이 양식을 주십니다.

돈을 드려야 할 것이나 그러면 너무 야박하다 하실 듯하여 과객들처럼 양식을 드린 것입니다. 앞뒤 경우가 있으니 받아주시고 댁에서 유숙하게 해주세요.

내가 공손하게 말하자 박 선비는 난처한 얼굴이더니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신통 아우의 아낙이니 저에게는 제수씨가 되십니다. 산간의 궁핍을 보여드린 것 같아 송구스럽군요.

안방으로 건너가 온 식구가 둘러앉아 저녁을 먹은 뒤에 다시 옆방으로 돌아와 끊겼던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그 절이 진천 보적사입니다. 거기서 두 사람은 서 대행수의 부상당한 다리가 나을 때까지 두어 달 은거했다지요. 서 도인께서 걸을 수 있게 되자 두 사람은 신사의 행적을 찾아 간성 왕곡리에 피신하고 계신 스승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이듬해 인제로 옮기시고 연이어 한 달마다 은신처를 충주 양구 간성을 왕래하시다 홍천 공주 진천 그리고 경상도 금능과 충청도 공주를 오락가락하셨지요. 이신통은 그 무렵에 전라도 지방을 돌아다녔다는데 서울 운현궁에서 만났던 김봉집이 고부 고향에 낙향했다는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그를 찾았다지요. 이때부터 서 도인과 이신통은 호남 서부 지방을 섭렵하고 다녔습니다. 호남에 퍼지기 시작한 교세는 마치 들불처럼 번져 나갔지요. 대신사께서 초기에 신사께 법통을 넘기시며 북대(北隊)를 맡으라 하신 이후 호남 지역이 어느 결에 남대(南隊)를 자처하게 되었으며, 세상 사람들은 물론 도인들까지도 남대 하면 즉 호남의 도인 조직을 일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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