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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대학을 갖고 노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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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대학을 갖고 노는 정부

입력
2012.09.23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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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 교육자였던 랄프 왈도 에머슨은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대학에서 가르칠 수 있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교육을 위한 방법뿐이다." 주입식 교육을 경계해야 한다는 경고인 동시에 창의성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설명이 필요 없는 독일 출신의 이론물리학자 아인슈타인도 대학 교육론에 있어선 에머슨과 생각이 거의 일치했던 것 같다. "교육의 목적은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개개인이 되는 것에 있다"는 게 아인슈타인의 지론이었다. 이른바 '짬뽕식 교육'은 필패한다는 걸 그는 일찌감치 설파했던 셈이다.

두 사람의 교육 철학을 가장 잘 활용하는 곳이 미국과 영국 유수의 대학들이다. 세계 고등교육을 주름잡는 두 나라의 저력은, 따지고 보면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야 말로 최선의 대학 교육이라는 아주 단순한 명제에 천착한 측면이 크다. 달달 외우고 복제하고 공식을 암기해서 기계적으로 풀어나가는 교육이 이뤄졌다면 스티브 잡스나 조앤 롤링 같은 상상력의 대가들이 우리시대에 나올 수 있었겠는가.

눈을 우리나라 대학으로 돌리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참담하다는 표현이 차라리 어울릴 수도 있겠다.

이명박 정부는 대학 교육의 기조를 자율화와 경쟁력 강화로 잡았다. 우리도 이젠 세계 대학 반열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는 채근이었다. 2008년 정권 출범 첫해엔 '대학 자율화 원년'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고, 선진국 대학을 지향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대학 선진화 방안이라는 걸 내놓기도 했다.

4년의 세월을 지나 정권 말기에 접어든 지금 대학 자율화의 성적표는 매우 저조하다. 수능 등급으로 치면 7, 8등급쯤 될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자율은 없고 규제와 통제로 점철돼 있는 현실에 원인이 있다.

입학사정관 전형 처럼 학생 선발권을 대학 측에 일정 부분 넘겨주고, 재단의 수익사업을 허용하는 따위가 대학 자율화로 여긴다면 오판이다. 등록금을 사실상 강제로 낮추게 하거나, 대학 구조조정을 정부가 주도하고, 법적 근거도 모호한 사학 감사를 감사원이 나서놓고 자율화를 운운하는 건 대학을 조롱하는 행위다.

허울뿐인 자율화의 결정판은 대학 평가라고 본다. 규제를 전제로 하는 평가와 자율화는 상반되는 개념인데도 정부는 같은 선상에 놓고 추진하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다. 정부가 세금으로 대학에 예산을 지원하는 만큼 수혜자 측을 평가해야겠다고 달려드는 것은 그럴 수 있으나, 대학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상이 문제였다.

취업률, 재학생 충원율, 교원확보율을 무기로 대학을 한 줄로 세우고 부실 대학을 걸러냈는데, 이게 결과적으로 대학을 취업 기관으로 만들고 있으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평가의 당위성은 십분 이해하더라도 방법이 틀렸다. 신입생 정원을 30%도 채우지 못하고 교직원 월급 주기도 어려운 엉터리 대학들은 정부가 손을 대지 않아도 자연스레 사라지게 마련이다. 이런 부실 대학 퇴출이 평가의 목적이었다면 기다리는 게 옳았다. 평가에서 하위 15%인 재정지원 제한 대학을 발표하기 보다 대학을 잘 운영하는 상위 15% 대학을 공개함으로써 이들의 노하우를 다른 대학에 벤치마킹하게 했다면 큰 박수를 받았을 것이다.

올해 정부 재정지원 제한 대학에 포함된 서울의 한 사립대의 행태는 우리 대학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교수평가에 학과 취업률을 반영하고, 이것도 모자라 취업률에 따라 정원을 조정하거나 교수 초빙을 제한한단다. 이러니 대학이 취업 학원이라는 소릴 듣지 않나.

사고의 폭을 넓히면서 개개인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에머슨의 조언은 우리 대학엔 적용되지 않는 공언(空言)일 뿐이다. 창의성과 상상력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사치일 수도 있겠다. 취업률과 학생 충원률이 높고 교원 확보율이 상위권인 대학을 좋은 대학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대학이나 학생들은 이미 '취업률 포로'가 돼 있다. 정부는 언제까지 우리 대학을 거꾸로 가게 만들 것인가.

김진각 여론독자부장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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