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백악관 레이스에는 늘 역풍이 기다리고 있다. 리비아 벵가지의 미국 영사관 피습 사건도 정치적 역풍을 가져온 한 사례다.
이 사건은 복잡한 질문들을 던졌다. 반미 시위를 촉발한 영화 '순진한 무슬림'의 표현의 자유, '아랍의 봄' 이후 정치적 과실을 얻지 못한 세력들의 과격화, 서구와 이슬람의 문명 충돌이 이 사건에 어우러져 있다. 그러나 영사관이 피습돼 현직 대사가 숨진 것은 약한 외교의 상징인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시절 이후 처음이었다. 이 사건에서 비롯된 정치적 파장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최대 피해자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정치의 역풍은 밋 롬니 공화당 대선 후보를 향해 불었다. 롬니 후보가 사건 직후 오바마보다 먼저 기자회견을 열어 그의 외교정책을 비난했지만 여론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국가안보 문제에서는 누구를 탓하지 않는 초당적 대응이 미국 특유의 여론이었다. 이런 기준에서 롬니 후보의 비난 공세는, 수단과 시점을 가리지 않은 부적절한 것이었다. 반면 백악관 집무실 밖 로즈가든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희생자를 애도하는 오바마는 민주당 대선 후보라는 이미지를 초월해 국가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성공했다. 결국 오바마 정부의 외교를 카터 정부의 그것에 오버랩하려했던 롬니 후보의 성급한 계산은 역풍을 맞고 말았다. 일주일 뒤에는 할아버지 비하에 분개한 카터 전 대통령의 손자가 롬니 후보의 몰래 카메라 동영상을 찾아내 직격탄을 날렸다.
미국의 선거 전문가들은 선거는 늘 계략들로 가득 차 있다고 본다. 하지만 불순한 선거운동은 종종 상황을 악화시킨다. 2000년 대통령 선거 직전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가 1976년 메인주에서 음주운전으로 체포됐었다는 언론 보도로 논란에 휘말렸다. 그러나 앨 고어 민주당 대선 후보 측이 이를 언론에 누설했다고 공화당이 반론을 펴자 여론은 부시가 아닌 고어를 믿을 수 없는 후보로 만들었다. 1988년 대선 때 마이클 듀카키스 민주당 후보는 국가안보 문제에 '소프트'하다는 비난을 받을 위기에 처했다. 고심하던 민주당 선거캠프는 그가 안보에 강하다는 이미지를 심어줄 이벤트를 마련했다. 듀카키스 후보가 군수회사를 방문해 탱크 병사 복장을 하고 탱크에 올라탄 모습이 전 언론에 보도됐다. 그러나 이 우스꽝스런 연출 사진에 여론은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여론은 오락가락하는 듀카키스 후보가 군 최고 사령관이 될 준비가 돼있지 않다는 조지 H 부시 공화당 후보 측 역공에 손을 들어주었다.
1992년 대선을 며칠 앞두고 터진 부산 초원복집 사건은 한국판 역풍의 대표적 사례다. 복집에 모여 불법 선거 운동을 논의하던 기관장들과 그 수혜자인 김영삼 후보 측에게 불똥이 튄 게 아니라 회합에서 오간 말을 도청해 공개한 쪽이 피해를 보았다. 4년 전 대선을 뜨겁게 했던 BBK 주가 조작 사건도 실제 진실과 상관없이 김경준 전 BBK 대표의 거짓이 탄로나면서 야당에 역풍으로 작용했다.
역풍의 대선 레이스들이 보여주는 것은 선거가 후보에 대한 '예스(yes)' '노(no)'의 단순한 게임이 아니란 점이다. 2004년 미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역사상 가장 낮은 지지율로 재선에 승리했다. 유권자들은 부시 대통령을 바꾸고 싶어 했지만 그 대안인 민주당 존 케리 후보가 대통령에 적합하다고는 보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대선 후보들이 결정되면서 본격적인 검증 시즌이 도래했다. 이를 계기로 정치인들이 미국에 비공식 입국해 미국 기관에 귀대기 하며 정보 사냥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후보의 사생활, 후보의 해외금융계좌 등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고 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해외에서 찾아낸 상대 후보의 약점으로 대선 판을 흔들 준비를 하는 셈이다. 그러나 상식과 여론에 어긋나는 폭로는 대선 가도에 역풍을 일으키기 쉽다. 꽃이 피려 할 때도, 꽃이 지려할 때도 부는 바람, 그게 선거 바람이다.
이태규 워싱턴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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