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9월 영국 런던은 디자인 도시로 탈바꿈한다. 세계 디자인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런던디자인페스티벌 덕분이다. 영상 5~10도의 쌀쌀한 날씨에도 각국 디자이너, 관광객들은 런던 곳곳에 마련된 전시장을 돌며 발품을 판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아 14~23일 런던 전역에서 펼쳐졌던 이번 행사에서 선보인 최근 트렌드는 버려진 물건의 가치를 재창조하는 업사이클링(upcycling), 다용도 아이템, 수공예적 작업으로 압축될 수 있다. 한국 디자인도 예외가 아니다. 얼스코트 전시장에 자리잡은 '100%디자인런던'한국관은 19~22일 한국 디자인의 경이를 보여주었다. '100%디자인런던'디렉터인 윌리엄 나이트는 "한국 디자이너들만의 색깔과 정체성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디자인공예그룹 패브리커는 원단 본연의 색감과 질감을 버려진 목조 가구에 더해내며 가구를 재해석한다. 버려진 가구에 원단을 한 겹 한 겹 쌓아 깎고 다듬어 완성한 가구는 다채로운 색감과 부드러운 곡선이 특징이다. 전 디자인 카운슬(영국의 디자인진흥기관) 원장이자 UKTI(영국무역투자청) 자문 위원 앤드류 서머스는 "업사이클링 제품은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원단을 이용해 기능과 감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며 극찬했다.
'옷 입은 가구'를 콘셉트로 가구의 색다른 변신을 꾀하는 디자인그룹 캄캄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원목 가구의 표면을 알록달록한 천이나 가죽으로 감싼 이들 제품은 100%디자인런던 심사위원들로부터 "매우 혁신적이며, 런던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할 것"이라는 평을 들었다.
하나의 아이템을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디자이너 권선영씨와 디자인투두의 송승용씨 작업에서 엿볼 수 있다. 송씨는 조명 상판을 평평하게 하거나 탁자처럼 조명을 제작해 협탁 겸 조명 두 가지로 활용 가능하게 했다. 권씨는 원단을 일정한 간격으로 커팅해 옷, 머플러, 전등갓, 쿠션 커버 등으로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게 한 '트랜스포머 룩'을 선보였다. 옷은 다양한 스타일로 변형 가능한데, 현장에서 이를 구매한 영국의 인테리어 디자이너 조이는 "원하는 스타일에 맞게 실험할 수 있는 다양성이 좋다"고 했다.
에멘탈 치즈를 잘라놓은 듯 구멍이 숭숭 뚫린 탁자를 디자인한 노일훈씨의 작품은 수공예적인 과정이 눈에 띈다. 영국 왕립 건축사이기도 한 그는 원단을 잡아당겼을 때 생기는 장력을 이용해 탁자를 디자인한다. 팽팽하게 당겨진 원단 곳곳에 구멍을 뚫은 후 유리섬유와 레진을 더하면 견고한 탁자로 완성된다. 노씨는 "가우디가 성가족 성당을 디자인할 때 실뭉치를 늘어뜨려 생겨난 이미지를 차용했다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그는 또한 손잡이라는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램프의 위치를 조절해 직접 조명과 간접 조명의 두 가지 타입으로 활용할 수 있는 조명도 선보였다.
개인부스를 차린 디자이너 김빈씨는 지난해 한국관에서 드링클립(Drinklip)을 선보여 세계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 컵이나 작은 화분, 컵라면 등을 안전하게 올려둘 수 있는 커다란 집게 홀더인 드링클립은 지난해 11월부터 대량생산을 시작해 지금까지 8만 개가 팔렸다. 김씨는 올해 한국의 전통적인 콘텐츠를 재해석하는 수공예 작품을 선보였다. 충남 당산에서 낫으로 벤 볏짚을 묶어 의자를 제작하거나 전주에서 3대를 이어온 장인과 공동 개발한 한지 작품도 눈길을 끈다. 한지로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숯, 화산송이 등으로 천연 염색하는데, 경복궁의 단청문양을 차용한 카드와 브로치, 바구니는 손으로 눌러도 형태가 변하지 않을 정도로 견고하다. 김씨는 "일본 와지에 비해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는 한지를 알리고 싶었다"면서 "조명, 접시 등 제품을 다양화할 예정"이라고 했다.
한국관을 설치한 한국디자인진흥원의 이태용 원장은 "세계에 한국 디자인의 무한한 잠재력 알릴 필요가 있다"면서 "올해 한국관에 사용된 부스를 가지고 11월 말에는 베이징에서, 내년 2월에는 뮌헨에서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 런던디자인페스티벌은
매년 9월 중순에 열리는 런던디자인페스티벌은 각기 다른 주최와 규모의 행사를 한 시기에 아우른다는 점이 특징이다. 비즈니스 장이 펼쳐지는 100%디자인런던, 세계 젊은 디자이너들의 자유로운 디자인 정신이 돋보이는 텐트 런던과 디자이너스 블록, 각국의 대표 디자인 브랜드가 참여해 디자인 트렌드가 한눈에 보이는 디자인 정크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 전시 등이 주요 행사다. 거리의 디자인샵도 빨간색 표지판을 내걸며 페스티벌에 동참한다. 지식경제부와 한국디자인진흥원은 2008년부터 100% 디자인런던에 한국관을 운영해왔으며, 지난해에는 100%디자인 런던에서 시상하는 블루프린트 어워드의 4부문 중 2개 부문을 한국 디자이너가 수상했다. 올해는 블루프린트 어워드가 잠시 중단됐다.
런던=이인선기자 kelly@hk.co.kr
[ⓒ 인터넷한국瞿?www.hankooki.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