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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필의 공간엿보기] <18> 서울역 - 온기와 표정을 잃어버린 도시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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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필의 공간엿보기] <18> 서울역 - 온기와 표정을 잃어버린 도시의 얼굴

입력
2012.09.21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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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驛)의 자리는 상징적으로 변방이다. 가령 서울역을 서울의 관문이라고 할 때, 모든 관문이 놓이는 자리가 그 공간의 가장자리라는 점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역은 긴 여행 뒤 열차에서 내린 승객이 낯선 도시의 풍경을 처음 마주하는 자리다. 그 때의 역전은 자신이 살았던 도시와 새로 깃들여야 할 도시가 만나는 경계 공간이 된다. 그곳은 전이의 공간이다. 익숙한 고달픔의 세월로부터 불안한 희망의 시공간 속으로의 전이. 물론 사정은 다양하겠으나, 도박판을 제외한다면, 행복한 사람이 자진해서 자리를 뜨는 경우란 드문 법이다. 어쨌건 역(그리고 역전)은 이동하는 이들에게 과거와 미래가 급격한 구비로 휘어지는 현재의 자리이고, 어디든 튼실하게 자리잡은 이들에게는 추억의 공간이 된다.

역은 잠깐 머물다 스쳐가는, 어쩌면 덧없는 공간이다. 영리하게 살아 삶의 행로도 미끈한 사람일수록 역에 머무는 시간은 짧다. 열차 예약 승객들은 출발 전에 화장실에 들르거나 가볍게 차 한 잔 마실 수 있을 만큼의 여유, 말하자면 각자 판단에 낭비해도 좋을 만큼의 여유를 깍쟁이처럼 계산한다. 마치 저만치 다가오는 걸인의 애절한 시선에 눈을 맞춰버려 하는 수 없이 호주머니 속 동전의 크기를 은밀히 가늠하듯이. 물론 그의 시선은 시계와 탑승 시각을 알리는 전광판, 혹시 배웅 나온 친지가 있다면 그들과 가끔 눈을 맞출 뿐 좀체 두리번거리는 법이 없다.

하지만 시야 바깥에는 거의 언제나, 역에 오래 머무는 이들이 있다. 출발 시각을 잘못 알고 나왔거나, 표를 미쳐 끊지 못해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지인을 마중 나왔을 수도 있고 딱히 할 일이 없어 일찌감치 나왔을 이들도 있다. 그 중에는 삶의 어느 한 순간 길을 잘못 들었다가 아주 잃어버린 이들,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다가 발을 헛디뎌 치명적으로 쓰러진 노숙자나 부랑자도 있을 것이다.

노숙자들이 역에 애착하는 까닭은 우선 그 공간이 벽과 문과 지붕을 가진 '집'이면서 누구에게나 항상 열려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인파로 북적대지만 그 번잡스러움 속에 익명으로 숨어 지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도 그들에게는 매력적일 것이다. 분주한 시선에 별볼 일 없는 풍경쯤이야 금세 미끄러진다는 사실, 자신의 누추한 인생이 관찰 당하거나 추궁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경험의 지혜가 그들에게는 있다. 역(광장)이 상징적 변방이라면 그들의 자리는 변방의 가장 후미진 곳일 것이다.

그 애착은 또 어쩌면, 부푼 첫 걸음을 내딛던 격렬한 전이의 순간에 대한 기억이 공간 안에 아직 어룽거리고 있고, 남은 생애 동안 다시 찾고자 하는 뭔가- 고향일 수도, 인연일 수도 있다-가 간절해질 때 지체 없이 열차에 오르겠다는 의지를 무의식 속에나마 지닌 까닭일수도 있다. 그런 이들은 비록 부랑자로 떠돌며 노숙을 하더라도 동료간의 에티켓과 바깥세상에 대한 예의를 안다. 목숨 부지하는 일이 버겁다 보니 상대적으로 거칠긴 하지만, 무례나 마찰은 어느 집단에나 있다.

2004년 4월 KTX 개통과 함께 문을 연 현 서울역(서울통합민자역사)의 컨셉트는 '국제공항 같은 역사'라고 한다. 투명 유리외벽에 도심의 실내공간으로는 드물게 넓은 5,000평 가까운 면적. 거치적거리는 시설물까지 최소화함으로써 극대화한 시야감은 그 공간을 마치 실내 광장처럼 보이게 한다. 서울역은 과연 국제공항의 외양을 파격적으로 본뜬 듯했다.

대합실은 크게 승강장과 매표소, 휴게 공간으로 나뉜다. 10개의 매표 창구 앞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합실 중앙에서는 철도공사 직원들이 커다란 테이블 위에 컴퓨터 모니터와 스마트폰을 설치해 놓고 '셀프 티케팅'을 시연하는 홍보 캠페인이 한창이었고, 뒤로는 "아직도 줄 서서 기다리십니까. Smart한 고객님 Speedy하게 기차 타세요!"라는 문구의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공교롭게도, 발권 창구보다 훨씬 너른 공간을 차지하고 선 자동발매기들은 대부분 놀고 있었다. 철도공사측은 스마트폰이나 SMS 등을 이용한 셀프티케팅 비율이 약 56.9%(8월말 현재, 전국집계)로 전반적으로 증가 추세인 반면, 자동발매기 이용률은 10.1%로 소폭 감소추세라고 설명했다.

서울역 이용객은 하루 평균 약 13만~15만 명(배웅객 포함). 명절에는 최대 20만 명에 이른다. 이들이 앉아 쉴 수 있는 의자는 2층 대합실의 경우 3인용 벤치 서른 개 남짓이 전부다. 평일 오후라 대합실은 한산했지만 벤치는 거의 만석이었고, 혹 빈 자리가 있어도 낯선 이들 사이에 껴 앉기엔 민망하리만치 협소했다. 벤치에는 한 사람 분의 경계를 두는 턱이 두 개씩 박혀 있었다. 노숙자의 잠자리로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거나 방만한 휴식이 볼썽사나워서일 것이다.

현장 매표를 했거나 다른 사정이 있어 대합실에서 한두 시간 혹은 더 오래 머물러야 하는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역 대합실 한 쪽 벽면을 따라 널어 선 커피숍이나 빵집 식당 등을 이용해야 한다. 아니면 신문지를 깔고 앉거나. 서울종합민자역사의 연면적은 약 2만8,000평. 그 가운데 상업시설이 약 1만여 평으로 역무시설의 약 2배에 이른다.

서울역 대합실은 그 이름처럼 승객들의 필요와 편의를 위해 배려된 기능 공간이지만, 이름 앞에 붙은 '민자 복합'이 의미하듯 철저히 계산된 이윤 창출의 공간이다. 실내 광장 같은 드넓은 한산한 대합실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잉여의 공간은 없는 듯했다.

서울역은 실내 광장을 얻은 대신 옛 광장을 빼앗겼다. 서울역 간판은 복합건물 중앙에 달렸지만 실제 역은 왼 켠 구석으로 밀려났고, 실제로 광장과 면한 건물은 백화점과 대형 음식점이다. 그나마 광장 면적도 도로에 잠식돼 옹색해졌고, 그나마도 '버스 환승센터'의 가드레일로 차단됐다. 이름뿐인 광장에서는 한 직능단체의 'OO법 결사반대' 집회가 한창이었고, 노숙자 20여 명은 한 선교단체의 상설 천막 안에 모여 설교를 듣고 있었다. 자신들의 무료한 시간과 한 끼의 식사를 맞바꾸기 위해서일까? 천막 귀퉁이에서는 이발 봉사자들의 손놀림이 분주했다.

광장은 미리 집회를 신고한 이들의 배타적 공간으로 변했고, 자투리 공간은 역을 스쳐가는 이들의 이동 통로로서만 제 존재를 지탱하고 있었다. 노숙자들도 눈에 띄게 줄었다. 서울시와 서울역 측이 "국민에게 안전하고 쾌적한 서울역을 되돌려주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노숙자 강제퇴거를 단행한 지 1년 남짓 만이다. 그들은 인근 지하보도나 지하철 역사로 이주했다고 한다. 공간화하지 못하는 기억들이 불모의 시간에 얹혀 표정 잃은 서울역 공간 안팎을 미련처럼 떠돌고 있었다.

대도시의 역은, 기능적으로는, 광역 공간의 심장 같은 곳이다. 하루치의 노동을 위해, 혹은 한 철 한 생애의 터전을 찾아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쉼 없이 드나드는 곳이다. 그 곳은 도시의 박동을 이어가는 공간이다. 그리고 심장의 생명은 온기다. 역사가 공항과 달리 도심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것도 저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1900년 생긴 이래 100여 년 동안 서울역은 숱한 이들의 기대와 낙담이 교차했고, 60년대 중반 이후 한국 근대화의 이름없는 주역들이, 파병 장병들이 거쳐간 공간이다. 그 공간은 넉넉하지 않은 이들끼리 부대끼며 서로의 생계를 기대던 진한 삶의 공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이어져 온 삶의 이야기들은 이제 김기찬의 <역전 풍경> 이나 사료 속 화보를 통해서만 고독하게 추억된다.

물론 증기기차나 비둘기호 완행열차가 다니던 시절과 KTX가 항공기와 경쟁하며 질주하는 시대의 역사풍경은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정부와 지자체의 관광홍보책자들이 내세우듯, 관문으로서의 역은 그 도시의 얼굴이다. 하지만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멋져 보이는 남과 닮아버린 얼굴, 온기 잃고 이야기를 품지 못하는 얼굴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아름다운 얼굴일 수 없다.

공간의 표정은, 그 공간 안에 깃들이는 사람들의 표정을 바꾸기도 한다.

최윤필 선임기자 proos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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