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두라스 출신의 퀘이빈 카브레라 마튜트(20)는 미국 정부가 지난달부터 접수를 시작한 불법체류자 구제 프로그램 신청자다. 미국에 온 지 11년째지만 여전히 추방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는 그에게 이 프로그램은 반가운 소식이었다. 16세 이전에 미국에 온 30세 이하 불법체류자에게 2년간 추방되지 않고 합법적으로 공부나 일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데, 마튜트에게는 결격 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대학에 진학해 건축을 전공하고 싶다”는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구제 대상이 되려면 거주 기간이 5년 이상임을 증명해야 하는 조건이 복병이었다. 마튜트에게 미국에서 살았다는 공식 기록이 없어서였다. 정부는 “은행 거래, 공과금 납부, 학교 재학 기록 등을 제출하라”고 요구하지만 합법적으로 고용된 적이 없고 은행계좌를 열거나 세금을 낸 적이 없는 그는 서류상으로는 유령 같은 존재였다.
생각다 못한 마튜트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마지막 희망을 걸기로 했다. 수년간 이용해 온 페이스북이 미국 생활의 유일한 자취였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에서 페이스북에 접속한 기록을 구제 프로그램 신청서에 첨부했다. 마튜트는 그것이 자신의 과거에 대한 가장 정확한 증거라고 생각하지만 정부가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13년 전 미국에 온 노르마(23)는 아직 신청서도 내지 못했다. 4년 전 미국인과 결혼한 후 모든 은행 거래, 세금과 공과금 납부를 남편 이름으로 해온 그에게도 행적의 증거가 없다. 간간이 보모로 일했지만 대가를 현금으로 받았고 아들을 낳은 후에는 주부로 살았다. 그는 “대학도 가고 싶고 일도 하고 싶지만 방도가 없다”며 “감옥에 갇힌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사례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행정 명령으로 긴급 시행된 불법체류자 구제 프로그램의 맹점을 보여준다. 워싱턴포스트는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으며 살아온 불법체류자에게 서류로 자신을 증명해 보이라는 요구는 벅차다”고 지적했다. 많은 불법체류자가 임금을 현금으로 받는 직업을 전전하고 가명과 가짜 사회보장번호를 이용한다. 이를 의식한 듯 정부는 “공식 기록 외에도 신청자가 관련 있다고 판단한 다른 서류들을 첨부해도 된다”는 조항을 덧붙여 놓았지만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불법체류자는 물론 관련 단체들도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워싱턴에 있는 라틴계 커뮤니티 단체인 센트럴아메리칸리소스센터의 법률 서비스 담당자는 “구제 프로그램 신청자에게 창의적이 되라고 조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국 거주의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모아보라”는 것이다.
일부 신청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가명, 가짜 사회보장번호로 했던 사회생활 기록을 제출한다. 불법체류자 지원 단체인 카사의 한 활동가는 “이들은 지나온 길의 모든 바위를 들춰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 이민변호사연합은 정부에 “용인되는 서류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라”고 요구해 왔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는 “불법체류자들의 사례는 개별적으로 검토돼야 하기 때문에 일일이 기준을 정할 수 없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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