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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정의 사람, 이야기] '골목사장 분투기' 낸 경영학도 강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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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정의 사람, 이야기] '골목사장 분투기' 낸 경영학도 강도현

입력
2012.09.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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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들이 처한 현실은 사방이 낭떠러지로 둘러싸인 살벌한 정글과 다름없습니다. 이 정글이 이제는 누구도 헤어나올 수 없는 죽음의 늪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한 젊은이가 부르짖는다. 물론 자영업의 위기가 낯선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의 외침에는 '소상공인 57% 이상이 평균 순수익 월 100만원 이하', '창업 2년 안에 50% 폐업' 같은 통계수치들과는 다른 무게로 뭇사람들의 귀를 잡아 끄는 힘이 있다. 멋 모르고 카페를 차렸다가 쫄딱 망한 뒤 힘겹게 다시 서기를 하고 있는 자신의 경험, 실패의 원인을 복기하는 과정에서 발품을 팔아가며 만난 숱한 자영업자들의 절박한 사연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최근 <골목사장분투기> (인카운터 발행)란 책을 낸 '카페 바인' 대표 강도현(34)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이 책에서 생생한 경험과 사연들을 밑재료 삼아 골목사장들의 분투가 십중팔구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을 짚고, 나름의 대안을 제시한다. 자영업을 하고 있거나 해 보려는 사람들이 '망하지 않기 위해' 명심해야 할 원칙들도 소개한다.

사실 강씨는 생계형 자영업자는 아니다. 미국 리버티대 수학과를 나와 대형회계법인의 경영컨설턴트, 외국계 금융사의 파생상품 트레이더로 일하며 한때 억대 연봉을 받기도 했고, 현재는 경영대학원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의 말처럼 "돈만 따지면 남부러울 것 없던" 직장인이 어쩌다 벼랑 끝에 선 자영업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경제 시스템 개혁을 부르짖는 투사로 나서게 됐을까. 200쪽 남짓한 책에는 다 담지 못한 사연을 듣기 위해 지난 18일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자리한 '카페 바인'을 찾았다.

-조기유학을 했는데, 집안이 부유했나 보다.

그렇지 않다. 남서울교회 부목사로 계시던 아버지가 1년 안식년을 얻어 가족이 함께 미국에 가게 됐다. 고1 때였는데, 마침 미국 유학 중이던 아버지 제자 분이 돌봐주겠다고 해서 동생과 함께 남아 대학까지 마쳤다. 리버티대는 버지니아에 있는 작은 기독교계 학교인데 워낙 학비가 싸서 여기 강남 친구들의 과외비도 안 되는 돈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그 후 삶이 본인의 표현대로 '롤러코스터'를 탔다.

졸업 후 귀국해 해군장교로 군대에 다녀온 뒤 국내에서 제일 큰 회계법인에 들어갔다. 2년 반 경영컨설턴트로 일하면서 금융시스템에 관심을 갖게 됐고, 제대로 한번 배워보자 싶어 외국계 금융회사에 지원했다. 3개월 임시직으로 들어가 냉장고에 먹을 것 채워 넣는 등 잔심부름을 하다 운 좋게 트레이더가 됐다. 이게 책상에 컴퓨터를 여러 대 놓고 수많은 숫자를 해독하면서 마치 게임하듯 숫자를 클릭하면서 기계처럼 돈을 버는 일이다. 처음엔 돈을 엄청 많이 버니까 좋았는데, 갈수록 그 과정이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억대 연봉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가족의 반대는 없었나.

아내가 원래 별난 줄은 알았지만, 살아보니 진짜 특이한 사람이라고 하더라.(웃음) 그래도 말리진 않았다. 돈을 돌같이 봤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다만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부를 창출하는 근간은 제조이고 금융은 그걸 돕는 건데, 그 많은 돈을 챙기는 게 과연 온당한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대한민국은 금융의 공공성에 관한 논의가 너무 빈약하다. 그걸 공부해보고 싶어 지난해 초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트레이더로 잘나가던 시절에 어쩌다 카페까지 차리게 됐나.

<복음과 상황> 이라고 기독교 보수계열에서 사회참여에 적극적이었던 청년들이 만든 잡지가 있다. 어려서부터 그걸 읽으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 선배님들이 '공의, 인애, 정직'이라는 가치를 실현하는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그게 공정무역 소비운동을 기반으로 하면서 참여연대 느티나무 카페 등처럼 사회적 소통이 이뤄지는 '소셜 카페'로 구체화됐다. 처음엔 투자자로만 참여했는데 적자가 쌓여 위탁경영이 어렵게 되자 경영 컨설턴트로 일했던 제가 운영을 맡게 됐다. 회사를 그만둔 뒤에는 사정이 더 악화해 카드 빚으로 적자를 메우다 결국 십시일반으로 모은 총 투자금 2억원을 2년여 만에 모두 까먹었다.

강씨는 "쫄딱 망하고 나서야 무엇이 문제였는지 비로소 보이더라"고 했다. 유동 인구가 많다지만 주말과 심야에 주로 몰리는 상권의 특성을 모른 채 물 좋다는 홍대 앞에 카페를 낸 것부터 문제였다. 임대료 부담을 줄이려 2층(35평)을 얻었지만 임대료 300만원에 10% 부가세, 수도ㆍ전기료, 아르바이트생 인건비, 재료비를 합한 총 비용이 월 680만원에 달했다. 그러나 매출은 한 달에 한 두 번 주말에야 겨우 30만원을 넘고 보통은 10만~20만원에 그쳐 월 700만원을 넘기기 힘들었다. 주인은 한달 내내 뼈빠지게 일해봐야 제 인건비도 못 챙기는 구조였다. 1층이면 사정이 달랐을까. 서너 배로 뛰는 임대료를 감안하면 한 달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문을 열어 매일 100잔씩 커피를 팔아야 겨우 100만원 남짓 가져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카페들이 즐비한 이곳에선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라고 다를까. 편의점이나 피자가게는? 명동 강남 등 다른 지역 사정은? 오지랖 넓은 강씨의 관심은 자영업 생태계 전반으로 확대됐다. 무작정 10km, 20km씩 걸으며 가게마다 들러 궁금한 것을 묻고 하소연도 들어주는 날들이 이어졌다. 밑바닥 리서치를 거쳐 그가 내린 결론은 "자영업의 위기는 개인들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이는 그가 서둘러 책을 쓰게 된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자영업의 위기를 구조적 문제로 단언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현재 자영업자 수는 약 800만 명으로, 경제활동인구의 30%에 육박한다. 이미 과포화 상태이지만, 명퇴 등으로 직장을 잃고 재취업도 어려운 이들이 카페나 편의점, 식당 같은 영세 자영업으로 꾸역꾸역 몰려든다. 사회안전망도 허술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창업을 준비할 여유가 없다 보니, 서둘러 창업하고 그만큼 쉽게 망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미국 부동산 웹사이트에서 알아 보니 뉴욕 맨해튼 한복판의 임대료가 홍대나 강남과 비슷하고, 계약기간은 무려 10년이더라. 경제규모를 감안하면 우리 임대료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수준이고, 2년마다 올리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 구조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고용 없는 성장, 빈약한 복지, 끝을 모르는 부동산의 탐욕 등 한국사회의 부조리가 총체적으로 얽혀 곪아 터진 것이 바로 자영업 문제라는 얘기다. 무능한 관료도 위기를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정부로서도 뾰족한 대책을 내놓기 어려운 문제다.

해법을 찾으려는 의지조차 없다는 게 문제다. 기획재정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영세 자영업 분야 고용이 늘어 취업자수가 증가한 것을 두고 '고용대박'이란 망언을 해 논란을 빚은 일이 있지 않나. 자영업 문제에 대해 정말 아무런 고민이 없다는 얘기다. 1만원 이하 매출은 카드를 받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가 카드사와 가맹점을 연결하는 밴더들의 로비, 소비자단체의 반발 등에 밀려 철회한 일도 있다. 정말 영세업자들을 위한다면 3,000~5,000원 정도로 기준을 낮춰 담배나 라면값 정도는 카드 수수료 부담을 줄여주자는 식으로 사회적 합의를 끌어냈어야 한다. 한번 꼬리를 내려버리니 다시 꺼내지도 못하게 됐다.

-책에서 세 가지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먼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예비 자영업자들이 특정 업종에 몰리지 않도록 상세한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동 단위로 상주인구 수, 평균 임대료, 업종별 신규ㆍ폐업 점포 수 등을 알려주면, 이 지역에 치킨집을 냈다간 망하겠구나 정도는 알 수 있지 않나. 자영업자를 양산하는 프랜차이즈 제도의 정비도 필요하다. 프랜차이즈 치킨집 등의 거리 제한 정도로는 부족하다. 본사에서 일률적으로 인테리어를 바꾸도록 강요하거나 재료 공급 등을 독점하는 구조를 개선해 본사와 가맹점이 리스크도, 수익도 나눠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자영업의 생존율을 높이려면 임대료 및 권리금 구조도 바꿔야 한다. 임대료나 권리금이 높다는 건 그 지역에 지하철이나 도로, 학교, 공원 등 공공인프라가 잘 돼 있다는 얘기다. 국민의 세금이 투입된 공공의 과실을 토지 소유주 등이 모두 챙기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지적은 옳지만, 부동산 문제는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사안이다.

안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순 없지 않나.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줄줄이 은퇴하는 향후 20~30년간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망해나가는 자영업자는 더 이상 '불행한 누군가'의 얘기가 아니라, 나와 내 가족, 내 이웃의 얘기다. 당장 머리를 맞대고 논의의 장을 만들어 고용부터 복지, 부동산 문제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제발 다같이 살 길을 함께 모색해보자는 소리다.

-얘기를 개인 차원으로 좁혀보면, 웬만하면 자영업을 하지 말라는 우울한 결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영업 외에는 달리 할 것이 없는 분들이 많은데… 그래서 책을 쓰면서도 참 난감했다. 이런 분들을 위해 저의 실패 경험을 토대로 '망하지 않기 위한 10계명'을 어설프게나마 소개했다. 자영업의 80%는 망한다는 통계가 있지만 다들 '나는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과신은 절대 금물이다. 처음부터 판을 크게 키워서도 안 된다. 카페라면 10평 정도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 너무 뻔한 얘기라고? 바꿔 말하면 그게 기본이라는 소리다. 기본을 지켜야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쫄딱 망하는 일만은 피할 수 있다.

-예비 자영업자들에게 이것 하나만은 꼭 명심하라고 조언한다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업(業)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나름의 방식을 찾으라는 것이다. 업의 본질을 잘 구현한 예로 두 집을 들곤 한다. 연남동의 '도깨비 커피집'은 에스프레소 기계를 두지 않고 손으로 직접 내려주는 커피만 판다. 커피의 다양성을 지키겠다는 확신과 자부심을 읽을 수 있다. 충정로의 한 해물뚝배기 집은 매일 재료별 상태를 A,B,C 등급으로 매기고 원가를 공개한다. '정보공개서' 수첩에는 일일 매출 현황과 직원들 시급까지 적혀있고, 주문할 땐 '아줌마' '사장님' '여기요' 등 대신 직원들 이름을 불러달라고 요구한다. '조미료를 넣지 않은 2% 부족한 맛'이라는 문구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감동을 준다. 이런 오리지널리티는 성공스토리를 담은 책 몇 권 읽는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영업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일찌감치 그런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카페 바인' 얘기를 좀 들어보자. 자영업 생태계가 살벌한 정글을 넘어 죽음의 늪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생업도 아닌 카페를 포기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인가.

보증금까지 다 까먹고 다음달 임대료도 못 낼 처지였다. 윤리적 노동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직원들 월급도 제때 주지 못했다. 그런데 폐업을 하자니 본의 아니게 해고를 하는 꼴이어서 고민이 컸다. 생계가 걸린 일이었다면 당장 털고 떠났겠지만, 사회운동 차원에서 시작한 일이라 오히려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마침 지금 이 자리에 우리와 비슷한 컨셉트로 카페를 운영하던 교회 분들과 연이 닿아 지난 6월 다시 문을 열게 됐다. 임대료가 절반으로 줄었고 매출도 꾸준히 늘어 적자는 면했지만, 언제 다시 문 닫게 될지 알 수 없다.

-언뜻 보기에는 홍대앞보다 목이 좋지 않아 보이는데.

그렇지 않다. 우리도 여기 와서 알았는데, 주간 유동인구는 이쪽이 홍대앞보다 많다. 그래서 책에도 점포를 구할 때 부동산 말만 믿지 말고 직접 발로 뛰며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라는 얘기를 넣었다. 경영 노하우도 쌓이고 커피교실과 온라인 매출도 늘었지만, 전체 매출이 30% 가량 오른 데는 장소적 요인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강씨는 '카페 바인' 시즌2를 시작하면서 전문경영인(김삼중 사장) 체제를 갖추고 '소셜 카페'라는 정체성을 살릴 방안을 찾는 일에 중점을 뒀다. '강정마을커피' '와락커피'로 이름 붙인 공정무역커피상품 200g짜리 한 봉지를 사면 구매액 1만8,000원 중 5,000원이 각각 제주 해군기지 건설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는 강정마을과 쌍용자동차 해고자 가족을 돕는 와락센터에 전해진다. 공정무역에 기반한 이른바 '착한 소비'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소셜 소비'를 결합한 셈. 지난 여름 강정마을을 방문해 사진을 찍어오면 아메리카노 1잔 값에 2잔을 제공하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강씨는 "예전에는 '해군기지 결사 반대'라고 써 붙였는데 손님들이 이런 문구를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면서 "사회적 이슈를 커피라는 상품에 자연스럽게 녹여낼 방안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트위터 등을 통해 '이번에 정권 못 바꾸면 카페 이름을 레지스탕스로 바꾸겠다'는 등의 격한 발언을 쏟아내기도 한다. "사상의 자유마저 억압하는 가짜 보수 세력이 판치는 세상, 자영업자들이 겪는 고통을 개인의 능력 부족 문제로 치부해 버리는 사회에는 희망이 없어요. 하루 빨리 그런 낡은 틀에서 벗어나 누구나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죠."

선임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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