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의 <평화그림책> 시리즈는 어린이들이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서로 도우며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한국 중국 일본 삼국의 그림책 작가들의 합작품이다. 세 나라는 지배하고 지배당한 가해자와 피해자이면서 이웃나라로 각별한 관계를 맺어 왔다. 다시 평화와 화해를 모색하려는 민간 차원의 이런 노력은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를 진지하게 물으며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려는 큰 걸음이다. 과거를 정직하게 기록하고 현재의 아픔을 공유해 평화로운 미래를 연대해 나가자는 것이다. 평화그림책>
그 첫번째 결과물인 권윤덕씨의 <꽃할머니> 는 1940년 열세 살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심달연 할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했다. 권씨는 책에 "스케치를 시작하면서부터 몸도 마음도 많이 아팠다"고 밝혔다. 책의 주인공 꽃할머니는 전쟁을 일으킨 나라의 식민지에 사는 가난하고 어린 여성으로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끌려가 끔찍한 일을 당했다. 몹쓸 일을 당한 위안부 소녀들의 이미지는 책에 스러진 꽃으로 표현되었다. 잔혹한 과거가 그대로 담겨 있어 일본 내에서는 출간이 어려운 분위기이나 일본 도신샤 출판사의 의지가 강하다. 권씨는 "도신샤 회장이 직접 지난해 10월 나를 찾아와 일본군이 어린 소녀를 끌고 가는 장면 등이 법정에 갈 경우 문제의 소지가 있다"며 수정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권씨는 도신샤가 위안부 문제에 일본이 국가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을 밝힌 <종군위안부> 라는 책을 쓴 요시미 요시야키씨의 자문을 받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종군위안부> 꽃할머니>
이억배씨의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 은 눈 앞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철조망 너머 금단의 땅을 북한출신인 할아버지의 안타까움과,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동식물 낙원의 이미지를 오버랩시켜 서정적으로 메시지를 풀어냈다. 이씨는 20일 '평화그림책 북콘서트'에서 자신이 중학교 시절에 그렸다는 반공 포스터를 보여 주면서 "그때의 반공 소년이 지금 평화 시민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은 거지고 우리는 부자인데 어떻게 먹여 살리냐는 등 통일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며 한반도 분단이나 평화를 보는 시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비무장지대에>
일본 하마다 게이코씨의 <평화란 어떤 걸까?> 는 아이들에게 구체적으로 왜 전쟁을 하면 안되는 것인지 조목조목 짚으며 깨우친다. '사랑하는 사람과 언제까지나 함께 있고 싶으니까' 평화를 지켜야 하며, '잘못을 저질렀다면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것' '어떤 신을 믿더라도, 신을 믿지 않더라도, 서로서로 화를 내지 않는 것' '목숨은 한 사람에게 하나씩, 오직 하나뿐인 귀중한 목숨'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평화라고 말한다. 아이들의 천진한 표정이 살아있는 그림은 '절대 죽여서는 안 돼. 죽임을 당해도 안 돼. 무기 따위는 필요 없어'라며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한다. 하마다씨는 "평화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아이들이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평화란>
중국작가 야오홍씨의 <경극이 사라진 날> 은 모친의 어린 시절 기억에서 모티프를 가져 왔다. 유명한 경극배우가 집에 찾아오면서 난생 처음 아름다운 춤과 노래에 빠져든 꼬마 소녀는 1937년 당시 열 살이던 어머니이다. 그해 12월 일본이 난징을 점령해 전쟁이 일어나면서 잔혹한 역사로 남은 도시를 그 소녀의 딸이 상상해 묘사한 것이다. 그는 "아이들이 이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책을 통해 언젠가 그 역사를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좋지 않은 과거라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 1,000년 이상을 넘어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배우에게 표를 받고 설레는 꼬마의 표정과 전쟁 발발 이후 회색빛 거리가 아스라하게 대조되면서 진한 여운을 남긴다. 연필 자국이 그대로 살아있는 세심한 그림은 슬픈 상황을 목도한 서술자의 심리를 반영한 듯 처연하다. 경극이>
일본 작가 다시마 세이조의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싸우는 것인지, 무엇을 위한 죽음인지 진지하고 거칠게 묻는다. 뭉개진 그림은 한편의 잔혹동화다. 전쟁터에서 죽은 어느 병사가 영혼이 되어 세상을 내려다 본다는 내용으로 빨강, 파랑 등 원색이 뭉그러진 이미지로 사물의 형태를 표현하는데 전쟁의 잔인성을 어떤 세밀한 그림보다 잘 나타내고 있다. 다시마씨는 "모든 걸 설명하는 그림이 아닌 생각할 수 있는 그림을 원했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이렇게 어두운 그림으로 동심을 짓밟는다는 비판도 받아왔는데 이번 작품은 지난 50년 간 그린 것 중 가장 잔혹하다"고 했다. 지금은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뒤흔드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그의 의지는 이번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내>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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