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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금 간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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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금 간 항아리

입력
2012.09.2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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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양 쪽에 항아리를 매달도록 만든 지게를 지고 물을 날랐다. 그 중 왼쪽 항아리는 금이 가 있었다. 우물에서 물을 가득 채워 출발하지만, 집에 오면 그 항아리의 물은 늘 반밖에 남지 않았다. 왼쪽 항아리가 주인에게 너무 미안해서 이렇게 요청했다. “주인님, 나 때문에 항상 같은 일을 두 배로 하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나를 버리고 새것으로 쓰세요.”

주인이 금 간 항아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네가 금이 갔다는 것을 안단다. 하지만 너를 바꾸지 않을 거야. 그동안 우리가 지나온 우물에서 집까지의 길 양쪽을 바라보아라. 오른쪽 길섶은 아무 생명도 없이 황무하지만, 왼쪽 길섶에는 아름다운 꽃과 풀이 무성하게 자라지 않았니? 비록 너는 금 간 항아리이지만, 너로 인해 많은 생명이 아름다움을 얻었구나.” 이 우화는 완벽한 스펙을 추구하고 실제적 효율을 앞세우는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 매우 예리한 경종을 울려준다.

세상이 삭막하게 되는 것은 너무 완벽한 사람들 때문이다. 일찍이 영국 수상 처칠은 국회에서 완벽한 연설을 한 어느 초선 의원에게, “다음부터는 좀 더듬거리게나”라고 충고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행복의 조건으로 다섯 가지를 들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생활에 조금 부족한 재물, 칭찬에 조금 못 미치는 용모, 절반밖에 알아주지 않는 명예, 한 사람을 이기고 두 사람에게 지는 체력, 그리고 청중의 절반만 박수치는 연설 실력이 그것이었다.

모두 약간 모자란 상태를 미덕으로 생각하는 표현법들이다. 그런데 그 모자람이 단순한 부족이나 결핍에 그치지 않고 겸손하고 자족하면서 빈자리를 채우려는 자기 개발로 이어질 때,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 15세기의 ‘성군’ 세종은, 왕세자로서 조선조 역사상 가장 짧은 제도권 교육을 받았다. 아버지인 태종은 세자 책봉 52일 만에 왕위를 물려주었고, 이 짧은 기간 이 통치력의 규격화를 막고 세종의 창의성을 한껏 발양했다. 반면에 연산군은 가장 오래 세자 교육을 받았으나 그 장기간의 보람이 전혀 없었다.

스펙이 모자라기로 하면, 우리가 ‘성웅’이라 부르는 이순신 장군만한 이가 드물다. 몰락한 역적의 가문, 과거 첫 시험에 낙방하고 32세의 늦은 나이에 급제, 14년 동안 변방 오지의 말단 수비 장교, 상관들과의 불화로 불이익과 파면, 고질적인 위장병과 전염병의 고통이 그의 것이었다. 뿐만 아니다.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한 후 47세에야 제독이 되고, 스스로 농지를 갈아 군자금을 만들었으며, 임금의 의심으로 공을 빼앗기고 옥살이를 했다. 빈손으로 돌아온 전장에서 12척의 낡은 배로 133척의 적선을 맞았으며, 스무 살의 아들을 적의 칼날에 잃고 마지막 전투에서 죽음 앞에 섰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그 모든 모자라는 것을 차고 넘치는 것으로 이끌었다. 오히려 모자랐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기적 같은 일들이었다. 이 엄연한 역사의 진실을, 계산이 재빠르고 영악이 넘치는 오늘의 세태와 견주어 보면 시사하는 바가 참으로 크다. 지금 우리 눈앞에 다시 펼쳐지고 있는 선거의 계절에 있어서도, 이 고색창연한 교훈은 여전히 그 효용성이 빛난다. 그것을 수납할 수 있는 지도자는, 이를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이다.

정권 출발 초기부터 많은 국민이 이명박 정부에 이질감을 느낀 이유 중 하나는, 각료와 비서진이 지나치게 부유하다는 사실이었다. 정권 말기에 이르러 친인척과 측근 비리로 얼룩진 결과를 낳은 것도 그 구도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 일이지만, 노태우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 자신을 ‘크게 어리석은 사람’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대선 후보때 스스로를 ‘바보 노무현’으로 묘사했던 전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 옛말에 등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했다. 이제 국민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되기를 원하는 후보는 이 모자람의 법칙을 익혀야 하되, 외형적인 모양으로서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진정성으로 해야 한다. 사람됨의 그릇에 대한 판단 또한 그러하다. 금 간 항아리 같은 결점 뒤에 보석 같은 국량(局量)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김종회 경희대 국문과 교수ㆍ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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