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세레나데/이명랑 지음/ 뿔 발행ㆍ304쪽ㆍ1만3,000원
지선은 술집에 나가는 엄마와 함께 조선족들이 모인 가리봉동 '옌볜 거리'에서 산다. 지선은 이미 열 살이 됐지만 "누가 물어보면 무조건 일곱 살이라고 하라"는 엄마의 다짐에 학교에 가지 못하고 철거촌 동네를 쏘다닌다. 자신을 언니처럼 따르는 향자, 동네 오빠 박보섭과 어울려 빈집을 놀이터 삼아 놀기 바쁜 아이는 때로 답답한 속마음을 고장 난 공중 전화 부스로 가 털어놓는다.
이런 지선의 일상이 바뀌는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악기를 배우게 된 것. 지선의 엄마는 피아노 학원 운영하는 '영감탱이'에게 맥주와 음식을 대접하며, 자신의 딸을 공짜로 학원에 보내는 데 성공한다. 그동안 문방구에서 산 종이 피아노를 치던 지선은 꿈에 그리던 가방을 메고 학원으로 간다. 지선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선율은 옌볜 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치유의 음악이다. 지선의 피아노 선율을 들으며 초록 들판과 안개에 휩싸인 산과 떠나온 고향의 이야기들을 사라들은 상상한다. 가리봉동 '옌볜 거리'는 음악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소설을 읽는 동안 베네수엘라 빈민가의 무상 음악 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베네수엘라 아이들이 클래식 음악을 통해 현재의 간난신고를 견디듯, 지선이도 피아노를 연주하며 누추한 현실을 견딘다. 전형적인 성장 소설인 이 작품은 음악을 계기로 해 아이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세계를 보여준다.
영화 같은 이야기지만 비슷한 실화를 바탕으로 씌어졌다. 작가는 말미에 "가리봉에 갔을 때 철거촌 한쪽에서 세 아이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고, 눈으로 보고 귀로 생생히 듣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며 "아름답다는 말밖에는 다른 어떤 말로도 그 음악을 설명할 수 없었고 돌아와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썼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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