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서점에 가지 않아도 인터넷과 휴대폰을 이용해 책을 사본다.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이동 중에도 휴대폰으로 책을 주문하거나 아예 전자책을 사서 전용 단말기로 보는 추세도 늘고 있다. 그런데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모바일 책 쇼핑'에 흥미로운 점이 있다. 30대 여성이 시장을 좌지우지 한다는 점이다. 육아ㆍ생활의 모바일 주문이 약진하고 있다. 아직은 미약한 수준인 전자책 시장에도 '언니들의 포르노'라고 불리는 그레이 시리즈 등 19금 콘텐츠가 놀랄 만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
30대 여성 구매율 높고 육아 관련 도서 구매 높아
워킹맘 박자영씨(33세)는 출근 길에 다섯살 세살 아이들에게 줄 책을 고른다. 그는 "아이들 떼어놓고 나오면서 미안한 마음에 출근하는 전철에서 종종 읽힐만한 책을 구입한다"고 했다. 박씨 같은 30대 워킹맘들의 구매가 이어지면서 온라인 도서 순위에 육아 관련이 눈에 띄게 늘었다.
온라인 서점 예스24의 올해 상반기 베스트셀러 100위권을 살펴보면 등 육아, 생활 분야가 14권이나 됐다. 종이책 100위권에 오른 육아, 생활 관련 책은 8권뿐이다. 이선재 예스24 마케팅본부 선임팀장은 "어린 자녀를 둔 30대 여성의 바쁜 생활패턴상 모바일로 간편하게 책을 구입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며 "특히 30대 여성은 모바일 구매에서 25%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한편 직접 책을 들춰보고 구입하는 경우가 줄면서 수년 전에 인기를 끌었던 베스트 유아ㆍ아동 책이 여전히 수위권을 차지하는 등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한 어린이 청소년 책 전문 출판사 대표는 "괜찮은 창작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정작 팔리는 건 지금은 한 물 간 수년 전 인기작품"이라며 신규 책 진입이 어렵다고 푸념했다. 이 대표는 일일이 내용을 확인하지 못하고 도서를 구입하는 사정뿐 아니라 엄마들에게 입소문이 난 책을 내 아이에게 읽혀야 강박관념도 한몫을 한다고 말했다.
"쉿! 이 책 읽는 것은 비밀"
최근 30대 여성들이 몰래 찾는 책이 있다. '언니들의 포르노'로 불리며 미국 아마존닷컴 사상 첫 전자책 100만부 판매 기록을 세운 로맨스 소설 (2권)와 2부 시리즈인 (2권)이다. 그레이 시리즈를 출간한 시공사에 따르면 출고된 종이책이 23만부다. 전자책은 4만부가 팔렸다. 예스24 판매집계로는 최근 3개월 간 출간된 도서들의 전자책 평균 판매 비중이 6%인 것에 비해 그레이 시리즈는 30% 정도로 5배나 많았다. 그레이 시리즈가 국내 전자책 시장에 구세주가 된 셈이다.
분당에 사는 결혼 3년 차 주부 김현미(31)씨는 최근 전자책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다. 자극적이지만 그렇다고 음란하거나 외설적이지 않은 '19금' 로맨스 소설을 주로 읽는다는 그는 이달에만 4권이나 구입했다. 그가 말하는 전자책 구입 이유는 "가끔씩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하지만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볼 수 있어 대중교통 이용 중에도 스마트폰으로 마음 놓고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서점에 사러 가기도 쑥스럽고, 인터넷으로 주문한다고 해도 출퇴근 길에 들고 다니며 보기엔 민망하다는 게 그레이 시리즈의 전자책 판매 비중을 높인 것이다.
전자책 시장의 새 트렌드로 '19금'이 자리 잡은 데에도 30대 여성의 힘이 컸다. 교보문고 전자책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 '19금'으로 분류된 전자책 판매는 남성보다는 여성에서 높았으며, 특히 30~40세의 여성 비율이 40.7%로 압도적이었다. 20~30세의 비율도 20.2%나 돼 20~40대 여성(60.9%)이 사실상 '19금' 전자책 시장을 움직인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교보문고의 경우 현재 보유중인 1,060종의 '19금' 전자책 중 실제 판매되는 콘텐츠는 925종이며, 보유 대비 판매 비율이 87.3%에 이른다. 올해 '19금' 도서의 종 당 판매량은 154권으로, 전자책 평균 판매량의 5배가 넘는 인기를 끌고 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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