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안철수 대선 출마 선언/ 의사 출신 벤처CEO로 승승장구…'젊은층 멘토'로 떠올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안철수 대선 출마 선언/ 의사 출신 벤처CEO로 승승장구…'젊은층 멘토'로 떠올라

입력
2012.09.19 17:33
0 0

컴퓨터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별난 의사'에서 '벤처 CEO'를 거쳐 '젊은이들의 멘토'로 성공적 삶을 살아왔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대선 도전을 선언하면서 정치인이란 새 인생의 무대에 들어섰다. '도전은 힘이 들 뿐, 두려운 일이 아니다'며 젊은이들의 도전 정신을 북돋았던 그가 자신의 말처럼 우리 정치사에 유례 없는 새정치를 구현해낼지 주목된다.

출생과 학창 시절

안 원장은 1962년 2월26일 부산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 안영모씨는 서울대 의대를 나와 부산 범천동에서 개원한 의사다. 비교적 유복한 가정 환경에서 자란 유년시절 병아리를 기르기 좋아하는 평범하면서도 내성적인 아이였다고 한다. 초ㆍ중학교 시절 학교 성적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학교 도서관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는 독서광이었다. 그는 "당시 책의 페이지수, 발행년월일, 저자까지 모두 다 읽고 바닥에 종이가 떨어져 있으면 그것마저도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활자 중독증이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고교시절 성적은 최상위권이었으며 기계를 다루는 것을 좋아해 과학자의 꿈을 키웠으나 가업을 잇기 위해 서울대 의대로 진학했다.

의대생 시절에는 야권의 유력 정치인들과 달리 민주화 운동 등 학생시위에는 가담하지 않았다. 대신 무의촌에서 무료 진료를 하면서 사회 현실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대학원에서 전기생리학을 공부하던 안 원장은 1988년 잡지를 통해 컴퓨터 바이러스의 존재를 알았고 이후 자신의 컴퓨터 디스켓에서도 '브레인 바이러스'를 발견한다.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컴퓨터 기계어를 막 배웠던 그는 이를 치료하는 백신 개발에 매달려 'V1'이란 첫 안티 바이러스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1989년부터 단국대 의대 교수로 재직한 그는 이후 7년간 낮에는 의사, 밤에는 백신을 개발하는 프로그래머의 삶을 살았다. 1991년 2월 박사학위를 받고 해군 군의관으로 입대하기 전날 밤까지 V3을 만든 뒤 PC통신을 통해 배포했다. 이를 통해 안 원장은 '별난 컴퓨터 의사'로 언론에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의사에서 컴퓨터 백신 개발자로

1994년 대위로 전역한 그는 의사를 포기하고 컴퓨터 백신 개발자의 삶을 택해 이듬해 3월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를 설립했다. 같은 해 9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테크노 MBA 과정으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 막바지인 1997년 7월 세계적인 백신 회사인 맥아피로부터 1,000만 달러 인수 제의를 받았으나 이를 거절한 일화도 유명하다. 같은 해 9월 귀국한 직후에는 과로로 쓰러져 입원하면서부터 술을 끊었다고 한다.

이런 과정에서 1999년 4월 'CIH 바이러스'(체르노빌 바이러스) 대란으로 수십 만대의 컴퓨터가 피해를 입은 것이 회사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백신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안철수연구소는 2000년 국내 보안업체 최초로 매출액 100억원을 돌파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안 원장은 이후 유학길에 다시 올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취득한 뒤 2008년 귀국, 카이스트 석좌교수로 임용됐다. 2011년에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인 김미경(49)씨는 안 원장의 서울대 의대 1년 후배로 학창시절 만났다. 카이스트 교수로 있다가 안 원장이 서울대로 자리를 옮길 때 함께 모교 교수가 됐다. 무남독녀인 딸 설희(24)씨는 미국으로 유학가 펜실베이니아 대학원에서 수학중이다.

또 다른 인생에 대한 도전

학계로 돌아온 안 원장은 정부의 각종 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사회 각계로 보폭을 넓히기 시작했다. 그러다 2009년 6월 MBC TV 인기 예능프로그램인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후 대중적 인기를 얻으며 젊은층의 멘토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각 대학에 강연에 나서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를 던졌으며 재벌을'동물원'에 비유,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IT 중소기업의 대변자 역할도 했다. 안 원장은 2011년에는 6월부터 3개월여간 의사인 박경철씨, 법륜스님이 이끄는 평화재단과 함께 전국 25개 도시를 순회하는 '청춘 콘서트'를 진행하며 큰 사회적 반향을 이끌어냈다.

안 원장이 한창 청춘 콘서트를 진행하던 지난해 8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부결로 사퇴한 뒤 그의 인생은 또 다른 전환점을 맞았다. 그가 서울시장 출마를 고민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안철수 현상'이라 표현될 정도로 폭발적 반응이 쏟아졌다.

그는 9월 6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양보했지만 그의 인기는 더욱 치솟아 가장 유력한 야권 주자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안 원장은 같은 해 11월 안랩 주식 지분(37.1%)의 절반을 사회에 환원, 재단을 설립키로 하면서 더욱 화제를 모았다. 그의 정치 참여 여부가 정치권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했지만, 안 원장은 뚜렷한 언급 없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올해 7월 <안철수의 생각> 을 출간한 뒤 국민의 의견을 듣겠다며 소통 행보를 시작했다. 그러다 19일 18대 대선을 3개월 앞둔 시점이자 '안철수 현상'이 일기 시작한 지 1년여 만에 그는 대선 출마라는 결단을 내렸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