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소설 마니아인 고교생 A(17)군은 한 포탈사이트에서 좋아하는 무협소설의 텍스트 파일을 찾아 소장할 요량으로 자신의 블로그에 연결(링크)시켰다. 며칠이 지나 원작자라는 사람에게서 '불법으로 저작물을 퍼 날랐다'는 메일이 왔다. 단순히 소설을 좋아해서 소장하고 싶었던 A군은 선생님에게도, 부모님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끙끙 앓아야 했다.
온라인 게임을 좋아하는 B(18)군. 4년간 틈틈이 시간을 내 온라인 게임을 통해 희귀한 아이템을 키우고 있었지만 최근 고민이 생겼다. 온라인 친구로 지내던 한 사람이 이 아이템을 돈과 바꾸자는 제안에 수락했지만 아이템을 건넨 후 연락이 끊긴 것이다. 게임만 한다고 꾸중하는 부모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고 창피해서 친구들에게도 말을 못하고 속앓이만 했다.
7일 오후 서울 송파구 B고등학교 강당. 120여명의 학생들이 수업 시간 이상의 진지한 자세로 설명을 듣고 있었다. 서울 송파경찰서 사이버수사팀 수사관들이 설명하는 '사이버 범죄 예방교실'이다. 인터넷과 게임이 공부만큼이나 생활의 일부가 된 요즘, 알아야 할 필수지식이라는 듯 학생들이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 모양새다.
송파경찰서 수사관들은 A군과 B군의 사례를 이렇게 설명했다.
"소설을 개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링크를 걸어 놓았다면 저작권 위반입니다. 지금이라도 소설을 내리고 링크해 놓은 소설을 통해서 금전적인 이익을 보지 않았다는 걸 수사관에게 증명할 수 있다면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어요."
"현행법 상 게임아이템의 재물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템을 준 대가로 타인이 돈을 주지 않은 경우 사기죄가 되지 않습니다. 아끼는 아이템의 경우 함부로 거래하지 마세요."
게임아이템 거래를 설명하는 수사관은 한 가지 팁을 더 줬다. "반대로 아이템을 팔 때 현금을 받고서 아이템을 주지 않을 경우엔 사기죄가 성립되니 조심하세요."
청소년 사이에서 스마트폰 이용률이 높아지면서 게임아이템 사기, 스마트폰 앱 관련 모욕 사건 같은 사이버 범죄가 빈번해지자 송파서가 관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별교육에 나섰고 학생들의 호응도 높았다.
지난 7개월간 중ㆍ고교 10곳을 찾아 8,000여명의 학생들에게 강의를 한 김성국 서울 송파경찰서 사이버수사팀장은 "청소년들 사이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한 왕따 문화나 명예훼손ㆍ모욕 등 사례가 급증해 상담을 받으러 오는 학생들이 많다"며 "형사사건으로 수사하기 곤란한 사례가 다수라 예방 교실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이버수사팀 업무 5건 중 1건은 초ㆍ중ㆍ고생들의 피해 사례. 하지만 예방교실 운영 이후 지난해 대비 올해 상반기(1~6월) 청소년 피해 접수 건수가 710건에서 505건으로 29%가량 줄었다고 한다.
이 날 강의를 듣던 한 학생은 "또래 친구들끼리 게임이나 채팅을 매일 하는데 저작권 문제나 게임 사기 피해가 일어날 때마다 말도 못하고 하소연할 데가 없었다"며 유익했다는 반응이다. 교사들 역시 환영하는 분위기다. 지난 5월 예방 강의를 받은 송파구 D고등학교의 한 교사는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사이버 범죄의 심각성이나 범죄 유형을 알게 돼 사이버 범죄에 노출될 수 있는 아이들의 상황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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