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의 본질이 잘못됐다."
장하준(사진)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교수가 요즘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제민주화 논쟁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장 교수는 19일 삼성그룹이 매주 수요일 개최하는 계열사 사장단 회의에 초청돼'한국경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강연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경제민주화를 통해 재벌들의 사업다각화와 선단식 경영, 왜곡된 소유구조를 비판하는데 이는 역사성을 무시한 잘못된 지적"이라며 "본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장 교수가 말하는 역사성이란 우리나라가 1970~80년대에 펼쳤던 압축성장 드라이브 정책. 그는 "과거 정부가 경제성장을 위해 재벌들에게 여러 사업을 떠넘기면서 사업다각화가 이뤄졌고 지주회사와 교차투자를 금지하다 보니 순환출자 밖에 할 수 없었다"며 "사업다각화 대신 핵심 역량만 강화하면 삼성은 여전히 양복지와 설탕만 만들고 현대는 길만 닦아야 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재벌기업에 대해서는 국민 지원을 업고 성장한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장 교수는 "정부와 국민들이 높은 관세를 통해 산업을 보호해 주는 등 대기업 혼자서 성장한 게 아니라는 점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장 교수는 개방만을 강조하는 신자본주의와 세계화를 비판하면서 한국형 발전모델을 높이 평가하는 입장. 세계적 석학으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으며, 최근엔 정치권으로부터 영입제의를 받기도 했다.
장 교수는 현재 정치권에서 쏟아내는 경제민주화 정책들이 자본주의의 근간인 주주자본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점을 문제로 보고 있다. 그는 "기업의 주인인 주주들이 1주당 1표를 행사하는 주주자본주의에 입각해 재벌 개혁을 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여기서 벗어나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대타협이란 재벌들이 성장할 수 밖에 없었던 과거 역사성을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뜻. 이는 장 교수가 주장해온 '시민권에 기초한 보편적 복지국가'론으로 귀결된다. 그는 "스웨덴처럼 복지와 성장이 선순환을 이루는 것이 곧 보편적 복지국가"라며 "1,2년이 아닌 상당한 시간을 요하는 만큼 많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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