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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태풍 진로 조작의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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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태풍 진로 조작의 오해와 진실

입력
2012.09.19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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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호 태풍 산바가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 선 온 국민은 깊은 시름에 잠겼다. 피해 규모가 아직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태풍 매미 이후 가장 큰 피해를 입었음에는 틀림없다. 이 태풍 이전에도 15호 볼라벤과 14호 덴빈까지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한 태풍 세 개가 연달아 우리나라에 상륙한 경우는 관측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볼라벤과 덴빈에 의한 피해규모도 엄청나서 사망 및 실종자 25명, 전남지역만의 재산피해액이 4,300억원에 달했다. 수도권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제주도와 남부지역의 피해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컸다.

세 개 태풍 중 하나인 볼라벤은 기상청 태풍예보관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줬다. 일부에서 기상청이 태풍진로를 조작했거나 왜곡했다고 얘기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상청이 예보한 태풍 진로에 맞추다 보니 원래 위치보다 우측으로 100km 정도 떨어진 지역으로 북상했다고 발표했고, 그래서 미국이나 일본에서 분석한 태풍진로와 크게 달랐다고 주장한다.

태풍 연구를 주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 태풍을 예측하고 분석하는 기관마다 태풍의 발생이나 세기, 진로 등에 100~200km 정도의 큰 오차가 있고, 학계에서는 이를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필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본 기상청에서 보고한 태풍진로를 적용했을 때, 기상청의 태풍예보 오차가 오히려 줄어들었다.

태풍 진로의 분석은 열대 해양보다 중위도에서 훨씬 어려운데, 아래에 주요한 요인 세 가지를 설명한다.

첫째, 태풍중심을 정하는 데에 있어서 태풍 가운데에 맑은 하늘이 보이는 '태풍의 눈'이 있으면 논란의 여지가 없다. 태풍 눈이 바로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전성기의 세기를 갖고 있는 열대 해양에서도 눈을 갖지 못한 태풍도 많으며, 중위도에 올라오면 세기가 급격하게 약화되어 그 전에 존재했던 눈도 사라진다. 따라서 중위도에서는 태풍 눈이 아닌 구름의 형태나 규모를 보고 중심을 판단해야 한다.

둘째, 태풍은 열대해양에서 발생해서 해상으로 북상하기 때문에 관측자료가 부족하다. 태풍 중심으로 갈수록 비바람이 강해서 항공기나 배를 통한 관측도 제한적이다. 그래서 태풍의 위치를 지상관측에 의하기보다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구름영상에 의존한다. 따라서 위성 구름영상을 15분 간격으로 조밀하게 수신하는 경우와 1시간 간격으로 간헐적으로 수신해서 태풍을 분석 할 때에는 중심위치 추정에 큰 차이가 난다.

셋째, 중위도에는 편서풍이 지배적이며, 고도가 높을수록 풍속이 세다. 지상 10~15km 고도에는 여름에도 초속 30m에 달하는 제트류라고 불리는 강한 바람이 분다. 태풍은 열대 해양에서는 똑바로 서 있는 원통모양을 띠지만, 중위도에서 편서풍을 만나면 바람이 센 상층에서는 하층에서보다 오른쪽으로 치우친다. 태풍이 '피사의 탑'보다 훨씬 큰 각도로 오른편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이다. 결국, 태풍을 지상 기압계나 바람 분포를 보고 추정하느냐, 상층 구름의 모양을 보고 추정하느냐에 따라 중심위치가 달라진다.

기상청에서는 천리안 기상위성에서 15분 간격으로 제공하는 구름자료를 분석해서 중심을 찾았을 것이다. 볼라벤의 눈이 사라지는 시점도 포착했고, 중심부의 개략적 위치를 쫓아서 태풍 진로를 추정했을 것이다. 미국과 일본도 우리와 비슷하게 가용한 위성자료를 이용해 태풍 중심을 추적했다.

하지만 서해안으로 북상하는 태풍이 두 나라에게는 위급한 기상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 위성수신 간격인 1~3시간을 유지했다. 이를 종합해서 우리나라 추정치가 더 정확하지 않을까 판단한다.

태풍의 위치 결정은 국가태풍센터나 국가기상위성센터 직원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100명이 넘는 예보관들이 검토와 토의를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이뤄진다. 상식적으로 봐서도 100명이 넘는 사람에게 조작이나 왜곡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본다. 지금은 추정한 태풍의 진로를 두고 논쟁을 벌이기보다, 피해 입은 국민을 위로하고 복구를 도울 때다.

허창회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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