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청에도 격이 있어 이름난 양반이나 관직이 있는 사람은 집사의 안내를 받아 큰사랑 쪽으로 갔지만 허물없이 드나드는 중인 이하의 아랫것들은 행랑으로 내려갔다. 행랑의 가장 큰방이 작은사랑인 셈이었는데 대개 식객들 중에 풍채가 있는 자들이 돌아가며 손님맞이를 하기 마련이었다. 유영길이 행랑 사랑채로 이신통을 데려갔는데 때는 대원위 대감의 세가 전보다 떨어져 왕족의 체통만 지키고 있던 무렵이라 방문객이 많지는 않았다. 안쪽에 서랍책상을 놓고 단정히 앉아 있던 사람이 그들을 내다보는데 눈빛이 쏘는 듯하였다. 이신통은 그 사이 전국 각처로 떠돌아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 세월이 십 년 가까이 되어서 인상을 보는 눈썰미가 생겼다. 신통은 그 사람이 예사롭지 않다고 느꼈다. 볕에 그을린 가무잡잡한 얼굴에 붓끝 수염이었으나 눈빛이 또렷하게 빛났다.
영장님 계십디까?
대감께서 출타하셔서 모시고 나갔으나 저녁 전에는 돌아올 걸세.
그의 목소리는 외모와 달리 컬컬한 쇳소리였다. 유영길은 신통에게 일렀다.
예서 좀 놀다가게 생겼군. 내 나가서 마실 거라도 좀 챙겨 오리다.
그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신통이 먼저 객으로서 자신의 출신 성명을 밝히며 인사를 청했고 작은사랑을 지키고 있던 사람도 맞받아 예를 차렸다.
정읍 고부에서 온 김봉집이라구 하오. 무슨 일로 오셨는지?
죽게 된 친척 아저씨 일로 청원이나 하고자 와 보았습니다.
김 서방은 무덤덤하게 바라보더니 한마디하였다.
그러면 지금 처결을 받아 옥에 갇혀 계신 거요?
예, 의금부 고신을 끝내고 대시수 옥에 갇혀 계시지요.
신통의 대답에 그는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바야흐로 난세인데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모르나 정말 죽일 놈들은 모두 벼슬아치들이지요. 청은 물론 양 왜가 함부로 들어와 나라의 이권을 제각기 도적질해가는 판인데 힘없는 백성들 등이나 치려고 벼슬을 사고 파니 망해가고 있는 것이지요.
신통이 김봉집의 말을 듣고 보니 의기가 있는 사람이었고 이쪽이 중죄인의 가족이라는 데도 별로 놀라지 않는 것이 기이해 보였다.
이곳엔 어인 일로 와 계십니까?
글을 읽고 배운 지 삼십 년이 넘어서 시골 훈장으로 연명하며 과거도 치러 보았으나 다 쓸데없는 일입디다. 과장이 난장판이 된 것이 벌써 백 년이 넘었다오. 시골에 살면서 부패한 관리와 잘못된 조세에 대하여 감영에 소도 올려보고 끌려가 곤장도 맞으며 살다가 처음에는 청원하러 이곳을 찾았소. 이 댁 수집사가 몇 다리 건너 아는 분이라 들렀더니 집안일을 도와주며 지내다보면 작은 자리라도 포부를 펼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겠느냐 그럽디다. 부끄럽지만 모두 부질없는 짓인 줄 속으로 잘 알면서도 하루 이틀 하다가 일 년이 넘었소 그려.
둘이 얘기를 나누는 중에 유영길 옥사장이 잘 아는 하인에게 소반을 들려 들어왔다. 소반 위에는 마른안주와 술병과 잔이 놓였다. 민어포에 생률이며 대추 등속이 안주고 술은 소주였다. 세 사람은 상머리에 둘러앉아 권커니 잣거니 하면서 몇 잔을 나누어 마셨다. 저녁참이 되어가는데 바깥에서 술렁이는 인기척이 들리더니 대감의 초헌(軺軒)이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황급히 술상을 방구석으로 밀어버리고 모두 마루 아래로 내려와 읍하고 섰으며 대감의 행차는 곧바로 중문을 지나 안사랑인 노안당으로 들어갔고 그들은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중문 밖 큰사랑 작은사랑 행랑채에 밥상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들도 식객과 손님들 틈에 끼어 저녁을 얻어먹었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서야 허민이 안에서 나와 큰사랑에서 그들을 부른다는 전갈이 왔다. 유영길이 신통을 데리고 허민에게 현신하였다.
영장님 기간 평안하셨소이까.
그래, 자네두 지낼 만한가?
덕분에 무고합니다. 실은 근래에 저희 옥에 서일수가 잡혀 들어왔습니다. 이 사람은 그의 조카되는 사람이지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