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역 부근의 고등동에선 한국말보다 중국말 듣기가 더 쉬워졌어요. 가게들도 중국인들을 위한 식료품점이나 양고기 판매점 뿐이고… 중국인들이 많은 지역이 모두 나쁜 건 아니지만 여긴 우범지역이 돼버렸으니 문제죠.”
19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고등동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 인근에서 만난 40대 주민은 중국인밀집지역으로 변한 동네를 한탄했다. 이 주민이 가리키는 도로 주변 상가에는 한글로 된 간판보다는 중국어 간판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그나마 한글로 된 간판을 달아 놓은 가게들도 상당수 중국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이처럼 고등동이 중국인 밀집지역으로 바뀌게 된 것은 고등동 주민센터를 중심으로 36만2,000㎡가 주거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된 2006년 말 이후부터다.
수원시와 대한주택공사는 고등동 기존 주택 6,052가구를 철거하고 올해 말까지 임대 및 분양 아파트 4,906가구를 건설하는 주거환경정비 계획을 세웠다. 당초 주공 등은 2008년 말 보상계획을 공고했지만 2009년 재정여건 악화 및 사업성 부족 등을 이유로 사업재검토를 하는 등 진척이 되지 않다가 결국 2010년 4월부터 본격적인 보상 착수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이주와 보상 등이 대부분 마무리되면서 지난해 12월부터 철거를 시작해 당초 계획보다 3년 늦은 2015년까지 완공할 예정이었지만 이마저도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철거가 미뤄지면서 6,000여 가구가 살고 있는 거주지가 슬럼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수원시는 주거환경정비구역 지정을 앞두고 2004년 무렵부터 골목 포장이나 하수도 정비 등 기반시설 개선공사를 중단했고 2006년엔 개발행위 허가 제한지역으로 묶이면서 주택 개보수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인접한 민간 재개발 지역(1,169세대)도 비슷한 시기에 재개발이 추진됐지만 공사가 늦어져 고등동 슬럼화에 한몫을 했다. 이 때문에 고등동은 안산 원곡동 등 다른 외국인 밀집지역에 비해 주택 임대료가 60~70% 떨어져 영세한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거주지역으로 변했다.
올 8월말 기준 고등동에는 한국인 1만2,595명이 거주하고 있는 반면 외국인은 20% 가량인 2,458명 살고 있다. 하지만 불법체류자까지 포함하면 고등동 거주 외국인은 4,000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등동 지역이 슬럼화되면서 중국인들이 국내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범죄를 저지르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경기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9일 조직폭력배와 연계해 수원역 주변 중국인거리에서 영업하는 상인들을 협박해 금품을 갈취한 혐의(상습협박 등)로 중국인 윤모(45)ㆍ김모(37·이상 중국인)씨 등 2명을 구속하고 수원 역전파 조직폭력배 심모(42)씨 등 19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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