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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병든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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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병든 지도자

입력
2012.09.1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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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자취를 감춘 지 2주일 만에 나타났다. 권력 서열 2위의 차기 지도자가 갑자기 온갖 유고(有故)설을 낳은 이유가 궁금하다. 권력 투쟁이나 암살 기도설 따위는 애초 근거가 희박했다. 간암 뇌졸중 등 중병설도 외양과 언행이 멀쩡한 점에 비춰 공연한 추측이었다. 수영하다 허리를 삐끗해 자리보전을 했다는 말이 오히려 그럴듯하다.

중국 지도자의 동정이 예사롭지 않은 것에 관심을 쏟은 건 언뜻 당연하지만 지나친 감이 있다. 과거 공산권 지도자들의 신변 이상에 유난한 관심을 쏟던 습관이 되살아난 듯했다. 중국이 비밀주의를 탈피하지 못한 탓도 있다. 그러나 대단찮은 낌새에도 곧장 정변까지 떠올리는 건 낡은 편견이다.

서구 국가는 지도자의 신병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다면서 중국 정치의 후진성을 나무라는 언론을 보면 더욱 그렇다. 신경정신과 의사인 데이비드 오웬 전 영국 외무장관은 2008년 저서 에서 민주국가 지도자들도 흔히 병을 숨기고 건강 상태를 속였다고 지적했다. 우드로 윌슨, 프랭클린 루스벨트, 케네디, 존슨, 닉슨, 조지 W. 부시, 처칠, 블레어, 퐁피두, 미테랑, 시라크 등을 예로 들었다.

윌슨은 1919년 파리 강화회의에서 치매 증상을 보였다. 그해 가을에는 심한 뇌졸중, 중풍으로 몸 왼쪽이 마비됐다. 시력과 지력도 크게 손상돼 7개월이나 각의를 주재하지 못했으나, 신경쇠약에 소화불량이라고 둘러댔다.

루스벨트는 39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줄곧 휠체어 신세를 졌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측근의 부축을 받아 걷는 모습을 연출했다. 대중은 그가 휠체어에 앉은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케네디는 40대 초반의 젊음과 활력을 과시했다. 2차 대전 참전 영웅인 그는 어뢰정이 일본 구축함과 충돌했을 때 다친 허리 때문에 고통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병약했던 케네디는 만성 부신피질기능부전으로 평생 스테로이드 약물에 의존했다. 척추 통증도 대학생 때의 교통사고 후유증에 스테로이드 부작용이 겹친 것이었다.

프랑스의 퐁피두 대통령은 골수암, 미테랑은 전립선암, 시라크는 뇌졸중을 퇴임 때까지 숨겼다. 처칠은 여러 차례 심장마비와 뇌졸중을 일으켰고 우울 증세도 보였다. 그러나 대중은 늘 강인한 노익장의 면모만 볼 수 있었다.

육체적 질환보다 더욱 심각한 건 지도자의 정신적 병이다. 오웬은 20세기 지도자들의 의료기록을 면밀히 살핀 결과,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존슨 대통령은 조울증, 테프트 대통령은 수면장애, 윌슨과 쿨리지는 우울증, 닉슨은 알콜 중독에 시달렸다고 진단했다. 마오쩌뚱과 무솔리니도 우울증 또는 조울증을 앓았다.

오웬은 특히 정치 지도자들이 한때 성공을 거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자만심 때문에 이른바 휴브리스(Hubris) 신드롬에 빠져 과오를 저지르는 것을 경계했다. 부시와 블레어가 이라크 전쟁에서 역사적 실패를 기록한 것이 대표적이다. 오웬은 지도자 자신은 물론이고 국익과 국제관계를 해치는 휴브리스 신드롬을 예방하기 위해 이를테면 대통령 후보의 정신 건강을 사전에 검증할 것을 제안했다. 또 유권자들이 판별 기준으로 삼을 징후를 열거했다. 대충 간추리면 이런 것들이다.

세상을 권력과 영광을 누리는 곳으로 인식하는 나르시시즘 성향을 보인다. 이미지에 크게 신경 쓴다. 메시아적 말투에 우쭐대는 경향이 있다. 지나친 자신감으로 동료나 여론보다 흔히 역사와 신(神)의 평가와 심판을 내세운다. 고집불통 자기 확신으로 구체적 정책에 신경 쓰지 않아 결국 실패한다.

이걸 우리 정치 지도자들에 견줘보면 어떨까.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 대권을 다투는 정치인들도 더러 해당될 듯하다. 대선 후보들의 정신 건강을 지금부터라도 잘 살펴볼 일이다.

강병태 논설고문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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