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은 독서의 달'이란 말이 낯설어 진지 오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를 '독서의 해'로 선포했지만 책 읽는 국민의 비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국민들의 손에서 종이매체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최근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독서율이 60%대로 감소했다. 1년에 책 한 권 읽지 않는 이가 10명에 4명 꼴이나 된다는 것이다. 현재의 감소 추세라면 곧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성인이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게 될 것이다.
독서하는 습관이 급속하게 사라지고 있는 것은 책을 대체하는 새로운 매체의 등장에 영향 받은 바 크다. 8월 국내 스마트기기 가입자가 3,000만 명을 돌파했다. 다시 말해 손에 스마트 기기를 끼고 생활하는 국민이 절반을 넘어섰다는 뜻이다. 언제 어디서든 접근성이 뛰어난 스마트기기 의존도가 높아지면 책을 멀리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최첨단 스마트 기기는 수용자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기술적으로 디스플레이의 밝기, 선명도 그리고 잔상 등을 개선하는데 총력을 쏟고 있다. 이들 스마트기기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우리가 오랫동안 익숙하게 보아온 책, 신문 등 종이매체의 느낌을 최대한 가깝게 재현하는 것이다. 기존 매체의 융합과 통합을 통해 다양한 양질의 콘텐츠를 확보하려는 노력들도 그런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기기와 책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존재한다. 독서는 필연적으로 '흡광'(吸光)을 필요로 하는 가장 자연적인 인간 행위의 하나다. 인쇄매체는 주변의 빛을 필요로 하고 주변을 밝혀야 읽혀지는 매체다. 스스로 빛을 내지 않기에 주변을 의식하게 하는 암시적 기능도 갖고 있다.
반면, 스마트라는 수사로 포장된 매체들은 속성이 전혀 다른 '발광'(發光)'의 매체다. 스스로 강력한 빛을 발산함으로써 수용자의 주의를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발광 매체들은 강력한 네트워크 시스템을 통해 멀리 있는 사람들과의 연결을 용이하게 만드는 듯 하지만 거꾸로 바로 옆,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분리시켜 놓기도 한다. 주변 보다 더 강한 빛을 발산하는 매체의 속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발광 현상은 사람을 수동적으로 매체에 종속시킨다. 실제로 '매체 중독'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은 TV, 인터넷을 비롯한 발광매체가 등장한 이후부터다. 심지어 가족들이 모인 공간에서도 주변을 전혀 인식하지 않은 채 각자의 스마트 기기에 몰입하는 모습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생활 속 소소한 중독과 몰입을 우리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매체가 발달하면서 오히려 전통적 의미의 공동체가 붕괴되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반해 책은 물리적인 공유가 가능한 매체다. 빌리기도 하고 나누기도하며 타인의 손 때가 묻어 있는 책 속에서 내용 이상의 감성을 공유할 수 있는 매체다. 그러므로 전자책의 편리한 기능만을 부각하는 것은 책의 본질적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 외부의 빛을 필요로 한다는 것에는 기본적으로 겸손함이 내재되어 있다. 또한 종이책은 수많은 감성적 속성을 품고 있다. 최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강한 자기주장과 이로 인한 대립과 불통은 대부분 발광매체를 그 매개수단으로 한다. 발광매체에 의존하는 소통은 자칫 철저한 자기중심의 소통을 통해 남에게는 '발광'(發狂)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흡광의 인쇄매체를 통한 독서는 단순한 책 읽기가 아니다. 책을 읽기 위해 밝혀진 주변을 돌아보며 공감을 나누고 겸허하게 자신의 내면과 소통하는 행위다. 독서를 통한 겸손한 깨달음이야말로 타인, 나아가 사회와 진정으로 소통하는 기반이다. 매체 진화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그 과정 속에서 필연적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은 독서만이 가능한 역할이다.
이종혁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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