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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기보다 '변덕 날씨'가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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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기보다 '변덕 날씨'가 더 무섭다

입력
2012.09.17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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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주요 백화점들은 거의 1년 내내 모피, 패딩 재킷 등 겨울 이월상품 기획전을 진행해야 했다. 아웃도어 업체들이 수년 간 급성장을 바탕으로 지난해 패딩 재킷을 대거 제조했지만, 겨울철 이상고온 현상이 12월 초까지 이어지는 바람에 엄청나게 많은 재고만 남았기 때문이다. 아웃도어 업계에선 "올해 신상품의 가장 큰 경쟁자는 작년 재고품"라는 자조적인 말까지 나돌 정도다.

여름엔 가뭄과 폭염이 차례로 찾아와 가전 매장이 '극과 극'의 희비를 겪었다. 불황과 전기료 인상 움직임에다 5~6월 내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가뭄이 계속되자 에어컨이 거의 팔리지 않았던 것. 하지만 7월 하순 갑자기 높은 습도를 동반한 폭염이 찾아오자 수요가 폭증하면서 에어컨은 주문물량을 미쳐 대지 못할 정도로 불티나게 팔렸다. 한달전만해도 여름철 최고 성수품인 에어컨이 팔리지 않아 울상을 짓던 하이마트는 순식간에 '사상 최대 1일 판매 기록'까지 수립했다.

4계절의 구분이 뚜렷했던 과거와 달리 '따뜻한 겨울' '눈 없는 겨울' '서늘한 여름' '짧은 장마'등 이상기온이 상시화하면서 기업들이 '기상리스크'에 벌벌 떨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경기불황은 예측이라도 가능하니까 대처가 가능하지만 날씨는 도저히 예측이 안되기 때문에 기업으로선 경기보다도 기상이변이 더 큰 위험요인"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날씨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패션, 아웃도어, 식품 및 유통업계는 기후변화에도 즉각적 대처를 할 수 있도록 제조ㆍ기획 시스템 자체를 바꿔나가고 있다.

패션업계는 ▦여름과 겨울 두 시즌에 집중하면서 ▦'근접기획' '반응생산'이란 새로운 기법을 만들어 냈다. 갈수록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고 봄 가을이 짧아지는 추세를 감안해, 봄ㆍ가을 상품인 트렌치코트는 이미 생산량을 크게 줄인 지 오래다.

근접기획이란 한 시즌 내에도 여러 '작은 시즌'을 나눠 제품을 기획하는 방식. 종전에는 여름 겨울 등 시즌별 제품을 6개월 전부터 일괄 기획 생산했는데, 주기를 짧게 가져가는 방식이다. 근접기획으로 만들어진 상품 가운데 소비자반응을 보면서 잘 팔리는 제품만 빠른 시간안에 생산하는 방식이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대표브랜드인 빈폴의 경우 2010년부터 이상기후 가능성에 대응할 수 있는 시나리오별 전략을 수립하고 전담인력까지 뒀었다"면서 "현재는 불규칙한 날씨의 영향을 제품 기획과 생산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오롱FnC 역시 2~3년 전부터 봄ㆍ가을 아이템은 최소화하고, 반응생산 물량을 늘려 이에 대응하고 있다. 변덕스런 날씨에 대응하기 위해 레이어드(겹쳐입기)가 가능한 단품 기획물량도 늘리고 있으며, 팔 부분을 떼어내면 조끼로 바뀌는 재킷 등 상황에 따라 변형이 가능한 '트랜스포머' 형 의류도 이상기후를 바탕으로 다양하게 기획되고 있다.

대형마트는 이상기후로 신선식품의 수급이 원활하지 않고 가격 등락 폭이 심하자 생물 생선 대신 건어물, 반건 생선 등의 비중을 높이는 등 가격이 안정적인 대체 상품을 적극 발굴해 판매하고 있다. 최근 롯데마트가 대형마트 최초로 과일 경매에 직접 참여하기로 한 것 역시 날씨 때문에 과일 가격이 심하게 등락한 영향이 크다.

신경환 롯데마트 과일담당자는 "대형마트는 대부분 과일을 산지 직거래로 매입하지만, 최근 이상기후 및 태풍 피해 등으로 공급과 수요가 불균형해지면서 일시적으로 도매시장 시세가 더 저렴한 경우도 발생했다"며,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매매 참가인' 자격을 취득해 직접 도매시장 경매에 참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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