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방자치단체가 현상공모를 통해 시민들의 문학작품을 뽑을 때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일이 있다. 모두가 시인이고 언론인은 혼자여서 좀 어색하고 불편했다. 위원장으로 선임된 시인은 그런 어색함과 불편을 부추기려는 것처럼 보였다. 지자체 관계자들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시를 낸 시민들에 대해, 나에 대해 '시인을 대체 뭘로 보느냐'고 힐문하는 투였다.'시인이 그렇게도 거룩한가'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 시인이든 소설가든 상을 받아 유명해지거나 책이 많이 팔려 돈을 벌면 오만해지는 경우가 흔하다. 글 쓰는 자들 특유의 괴팍함과 가벼움에 자신감과 권위까지 붙게 되니 언동이 되바라지기 십상이다. 게다가 이른바 文人相輕(문인상경), 예부터 글 쓰는 사람들은 서로 가볍게(우습게) 본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느 문학단체의 간부는 요즘 아주 잘 나가는 여성 작가들이 전화도 직접 받지 않는다고 개탄하면서 박완서 할머니는 절대로 그런 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 그 박완서 할머니의 1주기도 지나 생일(10월 20일)을 앞두고 나온 마지막 산문집 은 참으로 예쁜 책이다. 이달 초 출판된 (국립예술자료원)과 함께 읽으면 박완서의 문학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책상 서랍과 노트북에 들어 있던 2000년 이후의 원고와 편지를 추린 딸은 어머니가 보기에도 흡족하도록 책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바람과 옹달샘에 관한 이야기다.
■ 박완서는 남한강의 단골 음식점을 남편 사후 20년 만에 다시 찾아간다. 그리고 젊은 내 새끼들을 아름답게 보이라고 부는 것 같던 그 특별한 바람을 다시 느끼며 시간이야말로 신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수 김창완에게는 자연질서 안에 있는 행복감을 바람에 실어 보내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법정 스님을 깊은 산속 옹달샘이라고 회상하는데, 그 자신이 바로 사람들을 아름답게 보이라고 불던 특별한 바람이고 시원하고 맑은 옹달샘 아니었을까. 대가는 언제나 겸손하다.
임철순 논설고문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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