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 감독 교체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1년간 표면 위에 드러난 것만 세 건이다. 거대 자본이 감독 고유의 연출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과 감독, 제작자의 역량 부족도 함께 거론되고 있다.
지난해 8월 고현정 주연의 '미쓰GO'의 정범식 감독이 박철곤 감독으로 교체된 데 이어 올해 4월 '미스터 K'라는 제목으로 촬영 중이었던 이명세 감독이 제작사와 갈등을 겪다 메가폰을 놓았다.
8월엔 '남쪽으로 튀어'의 임순례 감독이 촬영이 90% 가량 진행된 상태에서 현장을 떠났다가 일주일 만에 복귀하는 일도 있었다. 그룹 빅뱅의 멤버인 탑이 주연을 맡은 '동창생'도 3분의 1 정도 촬영을 마친 시점에서 박신우 감독이 하차하고 조감독이었던 박홍수 감독이 메가폰을 이어 받아 이달 중순 촬영을 재개했다.
'협상종결자'로 제목을 바꾼 '미스터 K'의 제작사 JK필름은 "이명세 감독과 함께 만들고자 했던 영화에 대한 약속이 큰 틀에서 어긋났다"고 밝혔고, 이 감독은 "합의한 약속을 이행했다"고 반박했다. 양 측의 갈등은 영화의 저작권 소유 분쟁과 위자료 요구 공방으로 이어졌다. 임순례 감독은 제작사 대표로부터 연출권 보장을 약속 받고 현장에 복귀했다. '동창생' 제작사 측은 "감독과 제작사 대표가 영화에 대한 관점에서 큰 차이가 있어서 협의 하에 연출자를 바꾸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일부 제작자들도 잇단 감독 경질의 배경에 이윤 추구에만 몰두하는 투자ㆍ배급사의 압박이 있다고 본다. 제작사 A사 대표 B씨는 "힘의 균형이 투자사와 주연배우에게로 옮겨지다 보니 극단적인 수익 추구의 희생양으로 감독이 해고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B씨는 "영화계가 CJㆍ롯데 등 수직계열화를 이룬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이윤 추구에 집중하다 보니 제작사는 꼭두각시 역할만 하게 되고 감독이 일방적으로 해고당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투자ㆍ배급사의 입장은 다르다. CJ엔터테인먼트의 이창현 홍보팀 부장은 "계약이 제작사와 감독 사이에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촬영 과정에서 투자ㆍ배급사가 교체 문제에 대해 간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영화가 수십억원이 투입되는 산업인 만큼 자본의 논리를 따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제작사 C사의 대표 D씨는 "감독이 전권을 휘두르는 시대는 갔다"고 했다. 그는 "감독이 교체될 정도라면 제작자의 조율 능력은 물론 감독의 현장 장악력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견 감독 E씨는 대기업 투자ㆍ배급사의 간섭이 커지는 반면 현장 경험이 부족한 감독과제작자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E씨는 "제작 준비 단계에서 충분히 조율했던 부분에 대해 제작사나 투자사가 촬영 단계에서 매번 이견을 제시하는 건 옳지 않다고 본다"면서도 "현장 경험 없이 바로 데뷔하는 감독이나 제작 전반을 총괄할 능력이 부족한 제작자가 문제를 키우는 일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영화계 관계자들은 감독 교체라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촬영 전 충분한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투자ㆍ배급사 F사의 한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처럼 제작비를 촬영 도중 늘리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감독 교체 등 촬영 도중 문제가 생기지 않게 촬영 전 프리프러덕션(사전 제작준비) 단계에서 치밀한 준비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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