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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5. 하늘과 땅과 사람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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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5. 하늘과 땅과 사람 <122>

입력
2012.09.17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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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수는 이튿날 청주 목사가 임석한 가운데 고신(拷訊)을 받았고 스스로 천지도인임을 밝혔으나 교주 최경오의 은신처와 본부 도방에 대하여는 입을 다물었다. 목사는 서일수의 인적사항과 입도 경위며 활동 내력 등 기초적인 것들을 조사한 추국문을 첨부하여 장계를 올렸다. 보고는 공주 감영을 거쳐서 한양으로 올라갔고 곧 이어 의금부로 압송하라는 명이 하달되었다. 그해 말에 서일수는 청주 목에서 역마 편으로 한양까지 압송 되었다.

이신통이 이 무렵에 손천문을 따라 강원도 간성에 은거하고 있던 신사를 뵈었고 대책이 논의되었다고 한다. 이때에 신사는 한 달에 한 번씩 거처를 옮겨 다니며 지목을 피했다. 신통은 도력이 일천한 신도였지만 서일수와 도경을 출간하고 각종 언해본을 필사본으로 써서 널리 알린 일로 이미 본부 도방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었고 특히 신사의 측근인 손천문의 신임을 받았다고 하였다. 이신통이 서일수를 구명할 방도를 찾아 한양에 올라간 것은 그가 체포된 지 한 달이 지난 이듬해 정월 말이었다. 신통은 실로 여덟 해 만에 애오개 쌍버드나무집 객점을 찾아갔으니 경주인은 처음에는 그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가 서일수의 행적을 찾아온 연유를 말하고 군란 당시의 일을 이야기해주니 두 손을 덥석 잡으며 반겨주었다. 주인은 벌써 반백의 중늙은이가 되었는데 위로 해서는 물론 서북 관북 지방에까지 천지도가 퍼져 나갔고 삼남 지방은 탄압이 심하여도 일반 도인들의 왕래는 활발하여 애오개와 칠패 시장에 각 지방의 물산을 내어 객점은 그런대로 성업 중이었다. 그는 옆집까지 사들여 객점을 넓혀 놓았고 객점에서는 절대로 기도를 한다든가 밥을 먹을 때에도 천고를 하지 않았다. 그는 서일수의 체포와 심문 내용을 자세히 알고 있어서 신통에게 자세히 알려 주었다.

서 행수가 신사의 거처에 대하여 혹독한 조사를 받았다네. 그이가 지목했던 곳을 지방 관아에서 탐문하였으나 이미 산간의 집을 온 식구 솔가하여 비운 뒤여서 종적을 찾지 못했다지.

하더니 주인은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눈자위를 찍어내면서 말을 이었다.

서 행수는 주뢰형을 받아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네. 형문을 견디고 지금은 사형수 방에 있으니 한시 바삐 그이를 구명할 방도를 찾아야만 합니다.

전옥서에 연줄은 있습니까?

내가 서일수 도인이 잡혀 왔음을 어찌 알았겠나? 하루는 저녁 나절에 웬 사람이 나를 찾아왔네. 그가 내게 서일수란 이를 아느냐고 묻더구먼. 내가 그를 모를 리가 있나. 서 도인은 난리 뒤에도 가끔씩 한양에 올라와 우리 집에 머물렀거든. 자네 유영길이라구 아는가? 군란 때에 자네들을 알게 되었다던데.

신통은 김만복과 함께 처형당한 유춘길 별장을 기억해냈고 당시에 그의 동생 유영길은 달아나서 처벌을 모면했던 것도 생각이 났다.

예, 알 듯합니다.

주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연신 끄덕이며 말을 계속했다.

아무튼 그 사람이 지금 서린 전옥서의 옥사장이라네. 그이가 예전의 의리로 서 도인을 보살펴주고 있으나 언제 처형될지 모르니 하루라도 빨리 손을 써야하네.

신통은 그를 구명해내는 일은 신사와 본부 도방의 모든 대행수들의 한결같은 염원이라고 말했고 이튿날 오전에 객점 주인이 유영길을 찾아가기로 하였다. 전갈을 받은 유영길은 다음날 퇴청 시각 이후에 애오개로 이신통을 찾아왔다. 그들은 주인 방에서 함께 반주 한잔을 나누며 논의했다.

사형 처결이 내려졌으나 대시수(待時囚)인 것이 그나마 다행이요. 이는 바꿔 말하자면 도형수(徒刑囚)로 감형될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도형수로 감형이 된다면 유배형이 되겠군요?

그렇소, 사형 아래가 극변 위리안치형이니 그렇게 되면 목숨은 건질 수가 있소이다. 유배형만 떨어진다면 그 다음엔 미리 손을 써서 도중에 빼낼 수가 있겠지요.

그러면 감형을 시킬 방도가 없을까요?

천지도는 예전 천주학의 사례에 비추어 사문난적으로 다루는 죄인데 적어도 당상관 정도는 되어야 말을 낼 수가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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