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대통령이 될 것 같으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가 뽑는 사람이 된다"고 말하곤 했다. 처음엔 농담처럼 얘기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 대답에 점점 더 확신이 생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40대이기 때문이다.
차기 대통령은 40대 손에 달려있다고들 한다. 대체로 50~60대는 박근혜 후보, 20~30대는 안철수 원장을 선호하는 만큼 중간지대인 40대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이란 얘기다. 사실 내 연배의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지지후보에 대한 충성도가 다른 연령대보다 현격하게 낮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나름 마음에 둔 후보는 있지만 언제든 바꿀 용의가 있다고 주저 없이 말한다. 말 그대로 부동층인데, 그건 내 경우도 마찬가지다.
만약 이번 선거 테마가 '정책'이었다면, 40대의 선택은 좀 더 쉬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야 공히 경제민주화와 복지확대를 외치는 상황에서 정책의 차별화엔 한계가 있다. 더구나 2007년 대선 때'경제대통령'에 현혹됐다가 크게 실망한 터라, 이번엔 경제나 정책 이슈가 전면에 부각되긴 힘들어 보인다. 결국 올 대선은 철저하게 후보 개인의 대결이 될 전망이다.
나 자신에게서도 종종 느끼는 것이지만 40대의 정서는 아주 독특하다. 안정을 원하면서도 지금 상태가 그대로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변화를 바라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180도 뒤바뀌는 건 두려워한다. 50~60대에 대해선 답답한 보수라고, 20대한테는 철없는 진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와 안철수, 모두를 수용할 수도 또 거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40대의 관점에서 박근혜 후보의 강점은 적어도 나라를 불안하게 하지는 않을 것 같은 안정감이다. 철학 없는 대통령 밑에서 5년 세월을 보낸 국민들로선 그의 완강한 고집이 소신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TK출신이지만 특정세력 정치는 하지 않을 것 같고, 뼛속까지 보수이면서도 김종인씨를 중용하는 걸 보면 개방성도 있어 보인다.
이런 비교우위요소들은 지금 '유신'문제로 인해 다 묻혀버렸다. 진한 '박정희 향수'를 가진 노∙장년층이나 골수 보수그룹에선 역사인식을 문제삼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40대는 다르다. 기본적으로 보릿고개를 경험한 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향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80년대 민주화 세대로서 60~70년대의 산업화 세대와는 박정희 체제를 보는 눈도 판이하다. 따라서 과거사에 대한 박근혜 후보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40대는 그것을 더 이상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의 문제로 보게 될 것이고 결국엔 그를 외면할 공산이 크다.
40대에게 안철수 원장(만 50세)이 가장 어필하는 건 같은 세대로서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생각이 곧 40대의 생각일 수도 있다. 정치 아마추어란 점이 좀 걸리지만, 우리 국민들은 비주류정치인 노무현과 기업인 출신 이명박 등 새로운 유형의 대통령을 선택하는 실험을 계속해왔기 때문에 설령 안철수 원장이 대통령이 된다 해도 아주 이상할 것은 없다.
불안한 건 그가 비정치인이어서가 아니다. 그를 너무 모른다는 게 문제다. 국가 지도자를 뽑는데, 이제 석 달 밖에 남지 않았는데, 두 편의 TV프로그램과 한 권의 책이 그를 알 수 있는 전부라면 좀 심한 것 아닐까. 공감하던 40대도 이제 그의 주저함에 피로감을 느끼고 책임과 소통의 자세까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40대는 기성정치와는 다르고 신선하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걸 용인해줄 그런 충성도 높은 정치소비자가 결코 아니다.
이번에도 숱한 네가티브 공세가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웬만한 네가티브는 별로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이런 싸움에 익숙해진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후보 자신들이 가장 네가티브한 요소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철 산업부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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