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식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가 '교수의 교수'라며 추천한 박규환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가 이번엔 '토종 물리학의 수호자'라고 김대식(50)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를 추천했다.
한국 과학계는 질에서 뒤지지 않는 국산보다는 요즘 해외 명품을 선호한다. 명품은 노벨 과학상 수상자 같은 외국 유명 과학자, 국산은 우리나라에서 석ㆍ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들을 비롯한 토종 과학자를 말한다. 외국 유명 과학자와 손을 잡거나 초빙하는 게 유행처럼 번져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야 좀더 멋들어진 연구성과가 나올 거라고들 믿는 것 같다.
하지만 과학계 현실을 냉철하게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국내에 들어오는 유명 과학자들은 대개 연구현장에서 이미 한 걸음 물러선 노(老)학자들이 많다. 그들에게 큰 연구비와 첨단장비를 제공하는 한국은 제2의 인생을 보낼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일 수 있다.
이렇게 국내에 들어온 외국 과학자들은 연구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않았어도 자연스럽게 논문의 주요 저자가 된다. 결국 '이름값'이다. 밤샘 실험으로 논문의 대부분을 만들어내는 토종 과학자들은 허탈해질 수밖에 없다. 외국 석학에 의존할 게 아니라 토종 과학자 중에서 스타를 만들고 키워야 진정한 국가 과학경쟁력이 생기는 것이다. 김대식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는 나와 이 같은 철학을 공유하는 몇 안 되는 과학자다. 서울대 물리학과 후배지만 이런 철학을 몸소 실천하는데 앞장선다는 점에서 배울 게 많다.
서울대에 몸 담고 있으면 분명 외국 유명 과학자들과의 공동연구 기회가 넘쳐날 것이다. 해외 석학의 이름을 빌어 좀더 쉽게 좋은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낼 수 있는 유혹도 많을 거라고 짐작된다. 하지만 김 교수는 유명 외국인의 도움 없이 순수한 국내 학생과 토종 과학자들만의 힘으로 연구를 한다. 외국의 훌륭한 연구성과는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접할 수 있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토종 제자를 키워 거꾸로 외국으로 내보낸다. 제자가 한국 토종 과학의 우수성을 직접 나가서 알릴 수 있도록 말이다.
김 교수가 토종 과학자들과 함께 진동수가 테라헤르츠(1조Hz)인 빛이 나노미터(10억분의 1m) 간격을 통과한다는 사실을 처음 실험으로 증명해 2009년 광학 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포토닉스> 에 발표한 연구결과는 국제 광학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나 역시 공동저자다. 이 논문이 나오기 전까진 그렇게 빨리 진동하는 빛은 그렇게 미세한 공간을 당연히 지날 수 없다고 생각해 아무도 실험 시도조차 안 했다. 이후 많은 외국 연구팀이 우리의 실험을 재현하고 더 발전시키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네이처>
이른바 정부가 '밀어주는' 기초과학연구원(IBS)이나 세계수준연구중심대학(WCU)을 보는 토종 과학자들의 심정은 한 마디로 허탈하다. 외국 유명 과학자와 그를 끌어온 정치적 과학자에게 연구비가 쏠린다. 대기업엔 돈이 몰리고 중소기업은 허덕이는 우리 경제 현실과 비슷하다.
정리=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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