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간 생각나는 것만 해도 수원 우웬춘 사건, 통영 아름이 사건, 서울 중곡동 주부 성폭행미수살해 사건, 나주 초등학생 납치성폭행 사건, 성남 발바리 사건, 그리고 엊그제 청주 20대 여성 성폭행살해 사건까지. 잇따르는 성범죄가 입에 담기조차 지겨울 정도다. 하지만 신문이 이걸 보도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이게 지금 한국사회, 한국사람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진상을 드러내 원인을 찾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왜 이리 됐을까. 전자발찌 채워놓고 DNA 뽑아놔 봐야 성범죄는 계속된다. 외국 경우처럼 99년, 120년씩 징역형을 선고해도 새로운 성범죄자들은 나타날 것이다. 성범죄자 특히 아동과 미성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에 대한 정확하고 가혹한 처벌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처벌을 강화한다고 범죄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처벌 강화를 소리 높여 외치지만 그것은 손쉬운 사후약방문일 뿐이다.
말세다 싶을 정도로 지금 우리사회에서 성범죄가 횡행하게 된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 최근 일련의 사건이 벌어지자 비교적 솔직한 의견이 하나둘 나오고 있는 것은 그래서 다행이다. 그 중에서도 한국사회의 성 문화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 성범죄를 사회계급적 시각에서 접근하는 논의는 핵심을 꿰뚫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주위를 보자. 길거리에서부터 인터넷, 케이블TV, 지상파 방송까지 우리는 온통 성을 부추기기에 혈안이 돼 있다. 누구는 그것을 가리켜 한국을 선진국 아닌 '성진국'이라 했다. 인터넷 사업 중에 성공한 것은 포르노와 도박밖에 없다고 하지 않는가. 케이블TV에서는 하루종일 포르노가 방송된다. 아직도 한국 방송이나 영화에서는 성에 대한 위선이 남아 있어 중요 부위는 뿌옇게 처리하는데, 오히려 그것이 그릇된 성 의식을 더 부추긴다. 차라리 그것도 '개방'하는 것이 허위의식의 가면을 벗기고 성의식의 왜곡을 바로잡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물론 아동 음란물 제작과 유포는 또다른 문제다. 지상파? 아이돌 운운하는 스타들의 성스러운 복장과 몸짓은 그대로 세계에서 가장 선정적이라고 외국인들이 평가한다는 한국의 하의실종 길거리 패션으로 전파된다. 이런 것들과 성범죄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나 검증이 있는지 모르지만,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성을 상품화하는 데는 선진국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성의 상품화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사회계급적 원인의 성범죄 발생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범죄사회학자인 김준호 고려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범죄는 결국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또 힘없고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계급 문제"라며 성범죄를 비롯한 범죄는 '괴물이 저지른 일'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얼마 전 한국 최대 규모의 룸살롱이라는 어제오늘내일이라는 술집을 수사한 검찰은 룸 180개 종업원 500명인 이 룸살롱의 업주가 하루 평균 200여건, 1년10개월여 동안 8만8,000여건의 성매매를 알선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이런 곳에서 한 번에 몇십만원씩 주고 성을 매매하는 범죄를 저지르는 계급이 있는 반면, 한쪽에서는 성욕구를 해소할 길도 성을 매수할 수도 없는 계급이 성폭력에 살인이라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 바로 성범죄의 계급 문제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성의 상품화는 양쪽 모두의 범죄를 부추긴다.
비슷한 시각에서 김강자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최근 성범죄를 줄이기 위해 제한적 공창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 눈길을 끌었다. 못가진 자들의 성욕구를 풀어줄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서울종암경찰서장 재직 당시 속칭 미아리텍사스로 불린 집창촌을 단속해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되는 계기를 만들었던 인물이니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현실을 인정한 발언이라 할 수 있겠다.
성범죄 이슈는 따라서 우리사회 구성원들에게 성 문제에 대한 거대한 위선과 가식에서 벗어나 좀더 솔직해지라고 요구하고 있다. 범죄자 개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곪았다고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범죄 피해자들과 가족들의 고통이 너무 크다.
하종오 부국장 겸 사회부장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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