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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orld View/ 리비아 혁명 1년… 운명 뒤바뀐 간수와 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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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orld View/ 리비아 혁명 1년… 운명 뒤바뀐 간수와 죄수

입력
2012.09.1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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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를 42년 간 철권통치 했던 무아마르 카다피가 사망한 지 1년이 다 돼지만 나라는 여전히 혼돈 속에 있다. 오히려 카다피 시절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 독재정권 아래 자행된 가혹행위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이제 막 독재자의 그늘을 벗어난 리비아는 새로운 출발을 위해 복수와 용서,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카다피 시절 정권 전복을 꾀하다가 아부살림 교도소에서 11년 간 복역한 무함마드 과이다르(48)는 지금 수도 트리폴리의 아드바 교도소에서 간수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자기가 관리하는 죄수 중 아므사(59)와는 각별한 관계다. 감옥에 있을 때 자신을 고문했던 간수가 바로 아므사이기 때문이다. 둘은 2월 처음 만났다. 아므사를 알아본 과이다르가 입을 열었다. "나를 기억하시오?" 아므사는 머리를 저었다. 과이다르는 무릎을 꿇고 몸을 앞으로 굽힌 뒤 팔을 등 뒤로 돌려 묶인 듯한 자세를 취한 뒤 그에게 다시 말했다. "당신이 내게 취하게 한 자세입니다. 나는 이 상태로 열흘간 매달려 있었어요." 그제야 아므사는 고개를 들어 그의 상처투성이 손목을 쳐다봤다. "난 당신이 한 번은 나를 찾아올 줄 알았어!" 과이다르는 이렇게 외치고 울음을 터뜨렸다.

아드바 교도소에는 현재 전직 총리를 비롯해 14명의 정보기관 간부, 수십 명의 교도소 간수들이 수감돼 있다. 이들을 감시하고 심문하는 사람들은 카다피 당시의 정치범 또는 그들의 가족들이다. 이 같은 얄궂은 역할 바꾸기는 아드바뿐 아니라 전국의 감옥에서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혁명으로 정권을 뒤집은 이들은 독재정권을 위해 고문, 살해를 자행한 7,000여명을 체포해 투옥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인사는 카다피의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 카다피다.

이들의 첫째 관심사는 아부살림 학살이다. 1996년 교도소의 열악한 처우에 항의하던 수감자 1,270명이 집단 학살된 사건이다. 당시 교도소 측은 수감자들을 마당으로 끌어내 총을 쏘아 죽인 뒤 시체를 자갈 분쇄기로 갈아서 바다에 버렸다. 이들을 향한 피해자들의 감정은 복잡하다. '똑같이 고문하고 죽여야 한다'와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일이니 용서해야 한다'가 팽팽히 맞선다. 가해자들은 항변은 한결같다. "그때 재소자들을 쏘지 않았으면 내가 죽었을 것이다."

과이다르는 아므사를 고문하지도 때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자신이 먹는 것과 똑같은 음식을 주며 몇 달에 걸쳐 대화를 시도했다. 아므사에게서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설명을 듣는다면 모든 상처가 치유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므사는 차갑게 그를 외면했다. 아부살림 학살에 간여한 것은 인정했으나 그를 고문한 적은 없다고 끝까지 잡아뗐다. 과이다르는 "당장 고문하고 죽이라"는 주변의 권고를 뿌리친 채 묵묵히 그를 보살피고 있다.

과이다르가 겪는 갈등은 현재 리비아인들이 처한 딜레마다. 대다수 학살 피해자들은 정국 혼란을 틈타 얼마든지 가해자들을 죽일 수 있지만 이들이 법의 심판을 받을 때까지 인내하고 있다. 진정한 국가 재건은 법치를 기반으로 해야만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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